매일신문

[어제의 설, 오늘의 설] 핵가족·첨단화가 바꾼 풍경

세뱃돈, 빳빳한 신권 대신 모바일상품권 주기도

지금의 중년층이 어렸을 때는 1년 내내 설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설이 되면 평소 맛보지 못한 맛난 것들을 먹고, 새옷(설빔)을 입고, 세뱃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면서 그 옛날의 정겨운 설 풍경은 빛바랜 추억이 되고 있다.

'설'의 진정한 의미는 새해(음력)를 맞는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나누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날이다. 설날의 추억과 세태를 살펴본다.

◆추억의 설날

♬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 이래요♪

설날은 모든 사람에게 풍성함과 즐거움을 주는 새해의 큰 행사였다.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설날만큼은 이웃과 친지들이 모여 음식을 풍성하게 차려놓고 둘러앉아 정을 나눴다. 차례를 지내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덕담을 나누고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즐겁게 지냈다.

설날이 다가오면 집집이 설맞이 준비로 분주했다. 떡방아를 찧고 단술(식혜)을 만들고, 가마솥에 쌀'깨'콩 등을 볶아 상에 올려놓고 조청을 뿌려 강정을 만들었다. 남자들은 돼지와 닭을 잡고, 주부들은 기왓장을 곱게 가루로 만든 후 짚으로 놋그릇을 반짝거리게 닦았다.

아이들은 설을 손꼽아 기다렸다. 아버지가 장에 나가서 설빔을 마련해오시기 때문이다. 때때옷과 새 신발을 고이 모셔두고 설날 아침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새로 산 옷과 신발로 단장하고 세뱃돈을 받을 수 있다는 설렘으로 며칠 전부터 잠을 설친다. 설 전날 밤에는 가마솥에 물을 끓여 온 식구들이 돌아가며 묵은 때를 벗기는 '명절맞이 목욕'도 진풍경이었다. 목욕탕이 멀기도 했지만, 목욕탕 가는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설날 아침에는 차례를 지낸 후 마을마다 민속놀이 판을 벌였다. 어른들은 어울려 윷놀이를 하고 아이들은 널뛰기, 연날리기, 제기차기, 팽이치기, 투호놀이 등을 즐겼다. 설날 아침에는 복조리를 팔러 다니기도 했다. '복조리 사려' 하면서 동네 골목을 누비고 다니면 한 해 동안의 복을 기원하며 주부들이 복조리를 사 집안에 걸어두었다.

◆5개국 '외국돈 세트' 명절용 인기

시대에 따라 명절의 모습도 변화하고 있다. 설날도 자연스럽게 새로운 풍속도를 선보이고 있다. 고향에 계신 부모가 자녀들이 있는 도시로 찾아가 차례를 지내는 '역귀향' 현상은 벌써 오래전 이야기다.

일부 전통마을을 제외하곤 설빔을 곱게 차려입고 친척집을 찾아다니며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하는 모습도 이젠 거의 볼 수 없어졌다. 핵가족이 되면서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게 되고,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있다가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기에 가족끼리만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새해 인사도 문자 메시지나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 등으로 대신하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첨단 세뱃돈' 문화도 나타나고 있다. 현금 대신 전자화폐 등 IT 서비스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휴대전화로 선물하는 '모바일 상품권'은 책'음반'영화'게임'쇼핑 등에 쓸 수 있어 학생과 젊은이들에게 인기다. 외국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일부 가정에서는 세뱃돈을 '외화'로 주기도 한다. '행운의 2달러'와 유로화, 위안화, 호주달러, 캐나다달러 등 5종의 외국 지폐로 구성된 '외화 세트'가 명절에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정성스레 차례 음식을 준비하던 모습도 점점 사라져간다. 시장에서 음식을 사 차례 상에 올리는 것도 이젠 별로 어색한 풍경이 아니다. 요즘은 차례상 전체를 차려주는 전문업체까지 등장했다. 음식도 쌀 등 일부 우리 농산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입농산물이 차지하고 있다. '홍동백서'(紅東白西) 등 차례상 차림의 원칙도 퇴색하고 있다. 바나나, 파인애플, 멜론 등 외국 과일은 물론 각국의 다양한 음식들이 차례상에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