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별별세상 별난 인생] 북춤에 빠져 공연·기획·창작 연구회까지…인쇄소 대표 황보 영 씨

TV보다 꽂힌 북춤, 돈 세는 일보다 더 행복

황보 영(59) 씨는 평소 명함 2개를 가지고 다닌다. 하나는 인쇄소 대표 명함이며, 다른 하나는 한울북춤연구회 회장 명함이다. 황보 씨는 이 가운데 후자인 북춤연구회 회장 명함에 더 애착이 간다. 그만큼 북춤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내성적이라 평소 말이 별로 없는 황보 회장은 북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말이 많아진다.

◆뒤늦게 '끼' 발휘…국내외 수상 잇따라

1954년 군위에서 태어난 황보 회장은 초등학교 졸업 후 대구에서 철공소 직원으로 일하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상경, 친구 소개로 인쇄 일을 배우게 된다.

"하얀 지면에 글자가 또렷이 인쇄되는 게 신기하게 여겨졌어요."

무엇보다 쇠를 깎는 일처럼 위험하지 않았고, 월급도 많았다. 군 제대 후 대구에서 자리 잡은 황보 회장은 열심히 돈을 벌어 사무실을 열었다. 돈이 모였다. 욕심을 냈다. 입시학원을 차렸다. 그러나 학원장이 사고를 내는 바람에 빚을 떠안고 문을 닫았다. 열심히 일해 빚을 모두 갚고 사업을 넓혀 나갔다.

그러나 공허했다. 배움에 대한 갈증, 남은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그때 생각난 것이 국악이었다. "우연찮게 본 야외 국악 공연에서 국악에 대한 '끼'가 있음을 알았어요."

바로 국악교습소를 찾았다. 장구부터 농악, 사물놀이, 민요, 판소리, 대금, 북, 전통춤 등 다양한 장르에 빠져들었다. 1986년쯤 TV를 통해 밀양백중놀이의 북춤에 '필(feel)이 꽂혔다'. '장대하고 든든한 체격에 활기 있고 신명을 끌어내는 순박한 농부의 건강한 모습이 자연의 품에서 섭리대로 살아가는 진솔한 풍요로운 멋과 의젓함이 깃들여 있다'는 하보경 선생의 북춤론에 빠졌다. 그때부터 하 선생의 북춤을 녹화해놓고 익혔다.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4년 일본 나고야 아태대회에서 북춤을 선보였으며, 이어 대만에서 열린 국제키와니스 아태대회에서는 한량무를 춰 극찬을 받았다.

한 발 더 나아갔다. 2009년 7월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전국춤페스티벌 '천상의 몸짓 우리의 흥' 무대와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성공기원 공연 대한민국 북의 향연 '우리의 흥' 무대를 기획'감독했다. 지난해 10월에는 계명아트센터에서 한울북춤연구회 주최로 창작민속극 '가자! 아라리라'를 공연했다.

북춤의 매력에 빠지면서 사명감까지 갖게 됐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황보영류 한울북춤'이다.

황보영류 한울북춤의 특징은 4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마당은 하나됨의 화합이고, 두 번째 마당은 기반이다. 많은 이들이 모여 각자의 방법을 제시하고 연구하여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갈 때야말로 진정 에너지가 표출될 춤이 나온다. 세 번째 마당은 도약으로 절정에 달해 나오는 휘모리 가락과 어느 무대든 휘저으며 강하게 어필하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마지막 마당은 숨이다. 역동적인 화합의 자진 가락과 함께 이루어 낸 춤 가락, 절정에 달하는 휘모리 가락에 모든 힘을 쏟아 붓고 나서야 비로소 여유로운 굿거리 가락으로 숨을 쉬는 것이다.

상도 받았다. 2010년 북춤 발전 공로로 '미래의 한국인상'을 받았으며, 2008년에는 전통 북춤으로는 최초로 제13회 한밭국악전국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작년에는 '2012년 한국현대인물열전 33선'에 실리기도 했다.

황보 회장은 2007년 '한울북춤연구회'를 만들었다. 20여 명 회원과 함께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북춤에 대한 연구와 공연을 논의하고 있다.

◆초교 학력, 관련자료 모아 책 집필 중

'둥 둥 덩더쿵…' 6척(182㎝) 장신의 왼쪽 어깨에 커다란 북을 둘러메고 덩실덩실 춤과 함께 진군과 개선의 힘찬 북소리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심장을 뛰게 한다. 이처럼 황보 회장은 북만 잡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춤이 그렇게 만든다고 했다.

"땅 위를 사뿐사뿐 내딛는 동작은 새보다 가볍고 허공을 향해 힘껏 뛰어오르는 동작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라며 "남성적인 힘과 기교를 바탕으로 동적인 움직임과 북의 커다란 울림이 어우러진 한울북춤, 이것이 저의 춤"이라고 했다. 황보 회장은 북춤을 출 때 무아지경에 빠진다고 했다. 그래서 춤출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북춤을 추면 신명이 나고 피곤하지 않으며 정신을 더 또렷해진다"고 했다. 북춤은 또 건강에도 도움이 된단다. 온몸 운동이 돼 따로 운동할 필요가 없다는 것.

현재 황보 회장은 그동안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북과 북춤에 관한 책을 집필 중에 있다. 북의 기원과 발달, 춤, 종류 등을 담은 책을 5월에 출간할 예정이다. 황보 회장은 "북은 수렵이나 전투'제의(祭儀)의 신악기로 사용됐고, 법고춤, 상여의 선고리꾼, 신문고 등에 북이 사용되었지만 역시 농악기로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했다.

북춤은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발달했다고 했다. "경상도형의 북춤은 철저하게 원박에 맞춰 힘차게 치고 집단무용적 성격을 갖고 있는 반면 전라도형 북춤은 북 치는 가락이 섬세하고 다양하며 맺고 얼렀다 푸는 묘사가 뚜렷이 나타난 개인무용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춤은 사람과 북이 한 몸이 되어 춤을 추는 행위예요. 북은 살아 숨 쉬는 생명체들의 울림이요, 그들의 심장 박동소리입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힘찬 맥박인 셈이죠. 북은 모든 이의 삶과 생활의 애환을 표현하고 있어요. 따라서 북은 삼라만상의 일렁임이요, 숨결이기도 합니다. 춤은 인간이 지닌 흥취의 절정입니다. 모든 갈등과 모순 대립에서 벗어나 애오라지 현실의 고통을 벗어나고자 하는 완전한 몸짓입니다. 척박한 속세를 벗어나 성스러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지난한 몸놀림입니다."

황보 회장의 북춤에 대한 정의다.

사진'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