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친절

사람이 살아가면서 외적으로 드러나는 표정이나 언어로 그 사람의 수준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몇 년 전 형과 누나를 만나러 오랜만에 미국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 미국 국내선 비행기로 형님댁에서 누님댁으로 이동한 적이 있었는데 도착해 보니 내 가방이 도착하지 않았다. 나는 기다리던 자형과 함께 항공사 데스크로 가서 내 불쾌한 감정을 흥분된 표정으로 거칠게 항의했다.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자형은 "가방을 잃어버린 것이 데스크 직원 잘못도 아닌데 거기다가 얼굴 붉혀 기분 나쁘게 만들어서 과연 무엇을 얻어낼 수 있는가? 내가 필요한 것이 있다면 최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줘 상대방으로 하여금 기꺼이 도와주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는 항공사 직원에게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자초지종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 일은 잘 처리됐다.

인천공항이나 대구공항에서 같은 일을 당했다면 당연히 상대방에게 고압적인 자세로 소리를 지르며 얼굴을 붉혀서 온 동네가 떠나갈 듯이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텐데. 그 일을 계기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내 행동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인격적으로 성숙한 훌륭한 분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런 분을 내 경험으로는 많이 만나지 못했다.

고객을 대하는 입장에서는 누구보다 친절함을 강조하는 곳이 우리나라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로 고객이 서비스를 베푸는 사람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 친절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똑같은 인격체이지만 입장에 따라 한쪽은 마치 약자의 위치에 선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다른 한쪽은 마치 하인 대하듯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참된 인격의 가치는 전자보다 후자의 입장일 때에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된다.

'친절'이라는 단어의 뉘앙스가 한쪽 방향으로만 치우쳐 인식된 것은 비단 나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시절을 지나면서 경험했던 부정적인 아픔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렵고 힘든 시절을 통과하여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도달했을 때 과거의 상처들에 대한 행동 양식은 다르게 나타난다. 어떤 사람들은 상대적 약자들을 더 혹독하게 대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경험을 통해 약자를 보살피고 위로하는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을 아름다운 사회로 만드는 것은, 서로의 위치가 어떤가보다는 더 나은 위치에 있을 때 상대방에게 더 크고 많은 친절과 관용을 베푸는 것을 마땅하게 여기는 사회의 분위기가 아닐까?

김상충(성악가'이깐딴띠 음악감독) belcantokim@hanmail.net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