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박신영 지음/페이퍼로드 펴냄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서도 그렇고 '백설공주'에서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니는 것일까. 자기 나라가 아닌 나라까지 백마를 타고 가서 잠자는 공주를 만나고, 그녀와 결혼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쥐가 들끓어 골치를 앓던 독일 마을 하멜른의 아이들은 어째서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 가버렸을까.
독자는 동화에서 교훈(권선징악)을 얻고, 문학작품에서 감동을 얻지만, 그 이면의 역사성과 사회성을 간과하기 십상이다. 이 책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는 '백설공주' '빨간 모자'와 같은 고전동화에서부터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레 미제라블' '마지막 수업' '해리포터'와 같은 소설에 이르기까지 총 27편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간과해온 문학작품 속의 역사를 조명한다.
지은이는 옛이야기들 대부분이 구전되어 오다가 채록되었고, 시간을 거치면서 변형되었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당대의 사회 분위기와 역사, 윤리관이 배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은 서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옛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래, 백마 탄 왕자는 왜 그렇게 싸돌아다녔을까. 근대 이전 유럽에는 작은 나라들이 많았다. 30년 전쟁이 끝난 뒤인 1648년 독일에는 무려 300여 개의 나라가 있었다. 크든 작든 이들 나라 주인의 자녀는 모두 왕자와 공주였다. 왕들은 후계자를 결정할 때 땅을 나누어 주기보다는 한 사람에게 몰아주었다. 나누면 세력이 약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영토를 받지 못한 왕자들은 장래가 보장되는 성직자가 되거나 왕위를 잇게 될 이웃 나라의 공주와 결혼하려고 애를 썼다. 왕자들은 조건이 좋은 이웃의 공주를 찾아 헤맸으며, 이들에게 사랑과 용맹을 증명해야 했다. 왕자들이 이웃 나라의 숲 속을 떠돌아다니는 이야기의 배경에는 이런 역사가 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
왕비와 여왕들은 어째서 그토록 외모에 집착했을까. 옛날 권력층 여성들에게 아름다운 외모는 권력이자 생존이었다. 아름다움을 잃는다는 것은 곧 권력을 잃는 것이고, 생존 자체가 위험해진다는 의미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권력과 때로는 마법까지 갖춘 늙은 왕비는 어째서 젊고 예쁘지만, 애송이에 불과한 공주에게 늘 패배할까.
여기에도 역사성이 있다. 산업혁명 이전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농토와 농사지을 인력이었다. 여성의 가치는 노동력과 인구생산력으로 평가되었다. 가임률이 떨어지는 여성은 결국 쓸모를 다한 여성으로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늙은 왕비가 애송이 공주에게 패하는 이야기는 여성을 인구생산의 도구로 인식하던 시대상황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널리 퍼뜨린 작품으로 평가한다. 소설 '베니스의 상인'은 유대인 샤일록을 고리대금업에 종사하는 탐욕스러운 악덕업주로 묘사한다. 실제로 당시 많은 유대인은 고리대금업에 종사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까닭이 있다.
당시 유대인은 토지 소유가 금지돼 있었다. 설령 토지를 소유할 기회가 생기더라도 언제 추방될지 모르기 때문에 부동산은 의미가 없었다. 이자놀이사업에 많이 종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봉건영주들은 전쟁을 위해 돈이 필요해지면 유대인에게 빌렸고, 이 돈을 갚기 위해 농민을 착취했다. 농민들은 유대인이 자신들의 재산을 빼앗아간다고 생각했고 적대감을 가졌다. 영주들은 농민들의 이런 적대감을 이용해 유대인을 추방했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채무를 없애버리기도 했다.
이 책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는 낯익은 이야기에 낯선 질문을 던진다. 흥미롭다. 317쪽, 1만3천5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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