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등등하던 동장군의 위세도 한풀 꺾였다. 남쪽에서는 어렴풋이 봄기운이 감돌고 있다.
날이 풀리고 봄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하는 이맘때면 전국의 사찰에서는 수행에 정진해온 스님들이 석 달간의 동안거를 끝내고 만행(萬行) 길에 오른다. 바랑을 멘 스님들이 산문을 나서는 모습은 신성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들은 하안거가 시작되기 전까지 속세로 들어가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세상과 함께 호흡하며 진리를 찾아 나선다.
만행은 출가한 스님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속세의 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하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면서 나보다는 남의 눈에 맞추어서 사는 데 더 익숙해져 있는 시선을 자신을 위해 돌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다.
혜인 스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걷고 이야기하고 먹고 차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고 시장에 가는 모든 것, 뺨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를 듣고 친구와 악수를 하면서 감촉을 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수행이며 만행이다. 글자 그대로 만 가지의 행동이다. 만행에 만감이 따르기도 한다.
스님들의 만행을 닮은 것이 바로 여행이다. 흔히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불린다. 보이고 들리는 것들을 그냥 보고 듣기만 해도 마음은 충분히 풍요해진다. 몸과 마음이 힘들고 지쳤다고 생각될 때 뭔가 허전하고 정신적 목마름이 느껴진다면 여행이 '딱'이다.
우리 강산의 면모를 알아가는 즐거움과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쁨도 덤으로 누릴 수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기쁨이 배가 된다.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하면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행복을 체험할 수도 있다.
다행히 올해는 '빨간 날'이 많다. 주5일 근무를 기준으로 116일이나 쉴 수 있다. 2008년(115일), 2009년(110일), 2010년(112일)보다는 길게 쉴 수가 있다. 여행을 하기에 축복받은 해다.
스트레이트 연휴도 많다. 석가탄신일(5월 17일)과 삼일절(3월 1일)은 금요일이어서 주말까지 더하면 3일 연속으로 쉴 수 있다. 설 연휴(2월 9~11일)와 달리 추석 연휴(9월 18~20일)는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여서 토·일요일과 합치면 5일간, 연휴 전 이틀 휴가를 내면 최대 9일간 여유로운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지난해와 일수는 같지만 실속을 따져보면 직장인들에게 '축복의 해'라 할 만하다. 현충일(6월 6일), 광복절(8월 15일), 개천절(10월 3일)은 목요일이다. 징검다리 연휴라 연차를 잘 활용하면 나흘 연속으로 쉴 수 있다. 게다가 최근 정부가 올해부터 한글날(10월 9일)을 공휴일로 재지정해 하루를 더 쉴 수 있게 됐다.
법정 스님은 "소유한 것을 버리고 모든 속박에서 그대를 해방시키라. 그리고 존재하라.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여행은 풍부한 소유보다 풍성한 존재를 경험하기 위해 제격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 중에 제일이 여행이니까 말이다.
자신을 위해 시간을 만들어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자. 산도 좋고 바다도 좋고. 시원한 바람, 맑은 공기, 푸른 숲, 깨끗한 물이 있는 대자연의 품에 안겨 가슴 가득 새로운 봄기운을 채워보자.
최창희<특집부 차장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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