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멕시코에서였다. 숙소와 근처의 업무 현장을 오고 가는 동안 여러 명의 거지를 만났다. 그중에 한 사람은 유난히 지저분한 누더기에 맨발의 중년 남자였다. 멕시코에 이틀째 머물던 날은 가을비가 내려 쌀쌀했다. 마침 필요한 물건이 있어 우리나라의 슈퍼마켓쯤 되는 상점에 갔는데 그가 여전히 맨발로 입구에 서 있었다. 큰 빵 두 개를 따로 사서 건넸더니 그는 고개를 저었다. 빵을 받지 않겠다는 거였다. 재차 권하자 그는 검지를 세워 폈다. 한 개만 달라는 거였다. 나는 이미 날이 저물었고, 내일 아침도 먹어야 할 테니 두 개를 다 받으라고 했다. 그는 한 개만 받겠다고 고집했다.
다음 끼니를 걱정할 줄 아는 사람은 거지가 되지 않는다. 다음 끼니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진정한 거지'였다.
서구 문명학자들은 인류가 문명을 발달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 잉여 재산과 저축이 있었다고 말한다. 당장의 끼니는 물론이고 내일 끼니까지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 뒤에야 비로소 배를 채우는 일 이외의 영역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를 '노예제도'로 표현한다. 노예가 생산을 대신하는 동안 귀족은 문화와 예술에 관심을 쏟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잉여 재산과 저축에 대한 욕망은 '사람의 마음을 늘 가난하게' 만들었다. 곳간이 차면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곳간을 지어 더 많이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까닭에 곳간이 아무리 차도 마음의 곳간은 늘 허전하게 되어버렸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내일을 대비한다. 우리가 오늘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는 것은 내일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인류의 생존과 문명 발달의 근거인 만큼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여생을 편히 지낼 수 있을 만큼 재산을 가진 노인도 더 가지지 못해 노심초사하는 상황이니 장려할 일만도 아니다.
사람마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니 곳간을 어느 정도 채우는 것이 옳은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21세기 한국 사회라면 내 '당대의 끼니'만 염려하는 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그리고 다음 세대의 일은 다음 세대에 맡겨야 하지 않을까. 현 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노예'가 될 필요도 없고, 그들의 재산(자원)을 중간에서 가로챌 이유도 없다. 모두 '나그네'에 불과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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