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대구시는 섬유도시였고 부산은 신발도시였다. 섬유와 신발 공장은 중화학 공업과 달리 노동력 집약 산업으로 반드시 대도시에 위치해야 한다. 두 도시는 섬유, 신발 공장의 최적지였다.
그러나 산업화의 긴 터널을 지나오면서 섬유, 신발과 같은 노동력 중심 산업의 경쟁력은 급속히 약화되어 대구나 부산의 많은 공장들은 중국, 베트남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이런 산업화 과정에서 대도시는 경제가 고도화될수록 생산보다는 소비(서비스 생산) 중심으로 기능이 재편될 수밖에 없다. 즉 인건비 상승으로 섬유, 신발공장들이 떠난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삶이 변화하면서 도시 속의 공장들을 떠나보낸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공장들을 보내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시설'인 쇼핑센터, 문화시설들을 데려온 것이다.
그런데 지방도시가 서비스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소비도시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녹록지 않다. 서울과 달리 전문화된 서비스 일자리가 적다 보니 경쟁도 치열하고 부가가치가 낮은 서비스 업종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질 높은 서비스산업 역시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뚜렷하다. 대표적으로 지식서비스산업인 의료서비스를 예를 들어보자. 서울에는 빅5 병원이 있다. 서울아산, 삼성서울, 연세대 세브란스, 서울대병원, 가톨릭대 성모병원이다. 이 빅5 병원의 흡입력은 서울 인근뿐만 아니라 지방 대도시의 돈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뻗친다. 이들 빅5의 외지환자 비율은 50%를 넘고 우리나라 상급 종합병원 전체 진료비의 35~36%를 차지할 정도다. KTX와 같은 교통의 발달로 이들 병원의 지방 환자들은 더욱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비단 의료서비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법률서비스, 대학교육, 전문연구 등 전문서비스 영역에서 지방도시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결국 전문화된 서비스는 서울로 집중되고 지방 대도시에 남는 서비스들은 관광업과 같이 경쟁도 심하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춰야 하는 '감정 서비스'들이다. 그래서 3차 산업 중심의 경제 속에서 지방의 소비도시로 살아간다는 것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녹록하지 않다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지 아주 어렵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전문 지식보다 더 무서운 비장의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문화'다. 문화와 정체성이 있는 서비스는 지식서비스보다 더 높은 품격과 가치를 재생산할 수 있다. 우리 대구만의 독특한 문화를 발견하고 그 문화를 타지인들에게 잘 포장해서 서비스화할 수 있다면 우리도 승산이 있다.
서비스 산업은 사람의 기분과 신념에 따라서 그 결과와 품질 수준이 좌우되기 때문에 우리의 자원을 활용해서 잘 포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즉 돈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 서비스 산업 경쟁력의 첫 번째 원천이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가는 사람들의 기분과 심정을 이해해야 하고 반대로 서울 사람들을 이해해서 지방으로 내려올 수 있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증질환자들이 서울로 갈 수밖에 없다면 우리 대구는 병을 예방하는 진단기능 건강검진센터를 새롭게 만들 수도 있다. 병을 치료하는 기능은 서울이 더 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하고 병을 발견하고 진단하는 기능은 우리에게도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방의 전통과 문화, 자연환경이 이러한 검진기능과 결합할 경우 더 강력한 경쟁력이 될 수도 있다. 유럽 선진국들은 직장인들에게 안식 기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병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병을 치료하는 장기휴가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기업들도 과거에는 인정하지 않던 건강검진 휴가를 공식적인 업무휴가로 제공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앞으로 반나절 건강 검진은 점차 사라질 것이고 휴가와 연동되는 '힐링'을 추구하는 장기 건강검진이 대세를 이룬다면 우리 지방의 의료산업에도 희망이 있다.
어설프게 서울의 서비스 전략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나름의 환경을 활용하여 시장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우리가 서울의 대형 병원들과 똑같은 패러다임으로 경쟁한다면 그 승패는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대구만이 갖고 있는 전통시장, 한약재, 전통음식, 자연환경과 문화 등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차별화된 기능으로 상품화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도 새로운 서비스 산업의 기회는 생길 수 있다.
박종만/엑스코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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