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상학의 시와 함께] 해바라기야-석화(1958~)

해만 바라보고 사는 해바라기야

아침에 떴다 저녁에 지는 해

동산에서 솟았다가 서산에 지는 해

목이 비탈리도록 바라봐도

숨이 칵칵 막히도록 쳐다봐도

언제 한번 너보고 말을 건넨 적이나 있니

언제 한번 고개 돌려 웃어준 적이나 있니

커다랗게 네 키를 키워준 것은

네 발밑의 입 다문 흙이다 땅이다

해만 바라보고 사는 해바라기야

-연변 교포 시인 시선집 『두만강 여울 소리』(문학과지성사. 1991)

얼마 전(2013년 1월 30일) 구글이 북한지역을 보여주는 지도를 출시했다. 그동안 맨 도화지 같던 곳에 산이 돋아나고 집이 생기고 강이 흘렀다. 백두산도 보이고 평양거리도 한눈에 들어온다.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나는 눈호강이 그만이다.

이 시는 해바라기 보고 흙을 잊지 말라고, 뿌리를 둔 땅을 잊지 말라고 달래고 있는 모습이다. 해바라기는 본인일 수도 있고 그 땅을 본 적 없는 세대일 수도 있다. 이 땅을 떠나서 뿌리 뽑힌 채 세계 곳곳을 떠도는 유민들, 그리고 나같이 북쪽 땅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여기 사람들, 북쪽에 살며 여기 땅을 못 밟아본 사람들 부지기수다.

해바라기는 꿈꾼다. '목이 비탈리도록', 눈이 멀도록 희망의 해만 바라기하고 있다. 해바라기는 여물면 더 이상 해를 따라 돌지 않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때 땅이 없다면 어쩌나. 구글 지도에서나 남신의주, 청진, 정주 같은 곳을 키워본다. 발밑이 허전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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