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가 조조에게 물었다. "동탁을 토벌하는 데 실패한다면 무엇에 의지하겠느냐"고. "나는 남으로 황하, 북으로는 연(燕)과 대(代)를 차지하고 융적을 토벌한 뒤 천하를 얻을 작정"이라며 원소가 먼저 말했다. 그러자 조조는 "천하의 인재를 두루 모아 정도와 정의로 이들을 통솔한다면 어디서 무슨 일인들 못 이루겠나?"고 했다. 군사와 지리라는 패를 꺼내 든 원소와 정치'인재를 중시하겠다는 조조의 식견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떤 일이든 인재가 중하다고 한다. 중한 만큼 사람 보는 안목과 사람 쓰는 능력은 시공을 초월한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라는 역사가 베네데토 크로체의 말이 맞다면 숱한 경전과 사서에 언급된 인물과 인재 활용술은 지금도 유효하다. 흔히 사람 쓰는 일은 집을 지을 때 기둥 세우는 일에 비유한다. 좋은 재목을 골라 적재적소에 잘 쓰느냐에 따라 집 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 짓고 나서 나무가 물러 휘어지고 갈라진다면 그런 낭패도 없다. 애초에 재목을 잘 골라야 한다는 얘기다. 좋은 목수는 손재주도 중요하지만 재목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박근혜 정부에 대해 국민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총리와 내각 등 정부 인사 때문이다. 티 내지 않고 소신껏 하겠다는 게 당선인의 입장임에도 국민들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못 미더워서가 아니다. 도무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길이 없고,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믿고 맡겨두었다가 자칫 김용준 총리 후보 사퇴나 윤창중 발탁과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염려해서다. 언론들이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당선인 가운데 지지율이 최저라느니, 박 당선인의 국정 수행에 대해 '잘할 것 같다'는 수치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느니 이런저런 조사 결과를 들먹이며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에 입이 툭 나온 것도 다 민심을 반영한 것 아닌가.
국민 대부분은 박 당선인의 인재 보는 안목이나 인재 활용 스타일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당 대표나 국회의원 신분일 때 인재를 모으고 활용하는 법과,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 입장에서의 인사는 달라야 한다는 정도는 분명하게 안다. 더 날카로운 눈을 가져야 하고 안목도 깊어져야 한다는 소리다. 임기 개시 인사부터 너도나도 토를 달고 초를 치는 것은 MB 정부 내내 확인했듯 출발이 그만큼 중요하고 향후 5년을 가늠할 인사여서다.
새 정부 인사에 대한 이런 냉담은 당선인의 용인(用人)이나 안목에 대한 불신에서 연유한다기보다 국민 정서와 궁금증을 한 번쯤 헤아려주는 배려나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도 있다. 이를 매몰찬 검증이나 풍토 탓으로만 돌릴 일은 아닌 것이다. 검증한다면서 지나친 신상 털기로 일을 그르친다며 불만을 표시했지만 그게 어디 그들 책임인가.
'천리마는 어디에도 있지만 이를 알아보는 백낙(伯樂)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는 말이 있다. 백낙은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중국 주나라 때 준마를 가려내는 재주가 탁월했던 백낙이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 고사를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면 천리마도 찾아보기 힘들고 백낙도 없는 형국이다. 총리 후보감 30명을 봤더니 다 걸리더라는 얘기는 꼴은 천리마인데 흠이 많더라는 소리지만 먼저 사람 보는 눈이 어둡지는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조조는 인재의 중요성을 잘 알았다. 원소가 조조의 상대가 되지 못한 것도 인재를 보는 안목과 활용술에서 뒤졌기 때문이다. 옛말에 "울타리 하나도 말뚝 세 개가 받쳐야 서고, 영웅호걸도 돕는 이가 셋"이라고 했다. 이 말처럼 조조는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했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혼자서는 천하는커녕 작은 고을도 벅찬 게 세상사다. 떠들어야 병이 낫듯 인재도 떠들어야 모이는 법이다. 박 당선인은 지난주 유튜브에 올린 설 인사에서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새 시대를 시작하려 한다. 잘못된 관행들을 바꿔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잘잘못을 떠나 스타일도 굳어진 관행으로 친다면 박 당선인도 자기만의 스타일에 얽매이기보다 두루 소통하며 고정된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귀를 활짝 열고 시야를 조금 넓힌다면 박근혜 정부 5년을 떠받칠 좋은 말뚝이 어디 세 개뿐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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