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최인호는 대하 장편소설 '유림'을 통해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유교의 역사와 인문과 문화를 되살려 놓았다.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의 공자에서 근세 조선의 퇴계 이황에 이르는 유교의 흐름을 특유의 이야기 솜씨로 재구성한 것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에 소설 '유림' 추천 평에서 "우리 민족에게 유교는 폐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보존되어야 할 빛나는 유산임을 가르쳐준 귀한 선물"이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우리가 지키고 지향해야 할 참된 가치는 바로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줬다"고 호평을 한 적이 있다.
유림(儒林)이라는 말은 중국 한(漢)나라 역사가인 사마천이 사기(史記)에 '유림열전'을 구분해 넣으면서 통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림이란 유교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성현을 받들어 신봉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따라서 유림은 상당한 수준의 인격과 학문적 소양을 지닌 식자층이라는 점에서 종교적 의미의 신자나 신도와는 성격이 다르다. 조선의 유림은 선비를 지향했다. 선비가 추구하는 삶의 최고 목표는 자신의 도덕적 인격을 완성하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림은 어릴 때부터 철저한 인격 수련과 학문 연마의 과정을 거쳤다. 성인이 되면 과거를 통해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이 배운 것을 사회적으로 실천하고자 노력했고, 또 벼슬에서 물러나면 향촌으로 돌아가 후학들을 양성하며 학문을 정리하는 일에 전념했다.
현대사회인 오늘날의 유림이란 '유학을 공부하며 유교적 신념을 고수하는 사람' 또는 '성균관, 향교, 유도회 등을 드나들며 유학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사람' 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서양 문화의 유입 이후 유교적인 전통 질서가 크게 위축되었지만, 여전히 유교는 우리의 정신문화와 도덕규범을 지배하고 있으며 그 잠재적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경북의 유림은 특히 선비 문화의 핵심적 가치를 창출하고 유지해왔다. 안으로는 조화로운 공동체를 추구하면서 외세의 침략에는 의병 항쟁과 독립운동으로 맞섰던 것이다.
계사년 정월 초나흘 신도청 이전 지역인 안동에서 열린 '경상북도 유림단체 신년 교례회'에 유림 대표들이 모여 설 단배식을 가진 것 또한 웅도 경북의 새 시대 개막을 위한 유림의 의지와 열정의 표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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