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산방 도반들은 토요일에 산에 간다. 눈비가 와도 가고 햇볕이 쨍쨍해도 간다. 회원 여럿 중에서 둘만 모여도 가고 셋이라도 간다. 자연 속에 도(道)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죽자 살자 산에만 가는 것은 아니다. 한 달에 한 번 쯤은 바다에도 가고 축제가 열리는 곳을 찾아가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한절골 얼음축제장에 다녀왔다. 축제현장은 안동시 길안면 대사리 천지갑산 밑 길안천 한밤보 절벽 아래 강가이다. 이곳은 볕이 들지 않는 음지로 겨울 들어 한 번 언 얼음은 쉽게 녹지 않는 곳이다. 한절골 생태마을추진위 회원들이 작년부터 뜻을 모아 얼음축제를 열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자 한밤보 절벽에 호스로 물을 끌어올려 높이 70m의 빙벽과 눈꽃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넓은 강바닥은 빙판을 조성하여 다양한 겨울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체험공간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을 위해 이 마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이들이 참여하여 한 번 다녀간 사람이면 겨울마다 찾아 올 수 있도록 온갖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강바닥에는 경운기에 엔진을 단 얼음기차가 밧줄에 엮인 여덟 개의 썰매를 달고 매운바람을 뚫고 세차게 달린다. 마치 여름바다의 바나나 보트처럼 맴을 돌면 썰매들은 360도 회전하고 타고 있는 사람들의 함성이 터져 나온다. 이런 기차가 3개나 있으니 한절골 강변은 임시 간이얼음역이 되는 셈이다. 역장을 비롯한 기관사와 역무원은 마을 어른들과 청년들이 맡는다. 요금은 어른 5천원, 어린이 3천원.
강변에는 앉은뱅이 썰매 대여장도 있다. 만원을 주고 하나를 빌리면 실컷 타고 난 후 반납할 때 5천원을 내준다. 대여료가 5천원인 셈이다. 그 썰매를 보니 문득 어릴 적 생각이 나 '한 번 타 볼까'하고 맘을 내다가 내 나이가 욕심을 내는 나를 보고 쯧쯧 하고 혀를 차며 "그만 두지, 그래"하고 말린다. 그렇지만 자꾸만 눈에 밟혀 뒤돌아 보인다.
그 썰매를 보는 순간 길안천 한밤보는 간 곳이 없어졌다. 어느 새 나는 과거를 향해 달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고향의 거랑(川)에서 앉은뱅이 썰매를 타고 달리는 겨울 소년으로 변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쯤 되었을까. 성난 어머니의 얼굴이 얼음판 위에 언뜻언뜻 비쳤지만 빙판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는 도저히 없었다.
어머니가 아무리 "공부 좀 해라"고 윽박질러도 마음은 거랑에 가 있었다. 그 땐 내의도 옳은 게 없었다. 어머니는 솜으로 누빈 두루마기 같은 것을 내의 대신에 입혀 주셨다. 그 두루마기 내의는 용변을 볼 때도, 또 썰매를 탈 때도 불편하고 부자유스러웠다. 얼음을 지칠 땐 두루마기를 밖으로 끄집어내고 타야 제대로 속력을 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아랫자락은 놀이가 끝나면 항상 젖어 있었고 불을 피워 말려야 집으로 돌아 갈 수 있었다.
하루는 해걸음에 동구 밖에서 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안 들어오고 뭐하노"란 음성 속에는 잔뜩 노기가 서려 있었다. 오늘 저녁은 그냥 지나가기가 어려울 것 같은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급한 김에 두루마기를 빨리 말리려다 불꽃 쪽으로 너무 가깝게 댄 것이 화근이었다. 작은 쟁반 크기만큼 불에 타버려 그걸 끄느라 손가락까지 벌겋게 달아올랐다. 가출을 생각한 것이 그 때가 아마 최초가 아니었나 싶다. 겨울철 앉은뱅이 썰매 타기는 마약이었다. 두루마기를 벗어버리고 겉옷만 입고도 거랑으로 달려 나갔다. 모처럼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다시 절로 돌려보낸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그렇게 무서운 어머니였지만 때리면 맞고 이판사판 심정이었다. 그러다가 사고가 생겼다. 썰매는 모두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이었다. 썰매 날 격인 굵은 철사는 방천의 돌덩이를 얽어 놓은 철망을 돌로 두들겨 끊어 온 것이었다.
며칠 뒤 저녁에 앞집의 부면장님이 나를 오라고 하셨다. '무슨 심부름을 시키시겠지'하고 갔더니 대뜸 "이 놈, 방천둑에 철사를 끊어 수겟또 만들었제"하고 다짜고짜 고함을 지르셨다. 나는 "잘못 했습니다"하고 빌지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만 서 있었다. "수겟또 이리로 가져 온나" 그것이 끝이었다. 그날 이 후 마약 같았던 빙판 놀이를 끝내지 않을 수 없었다. 부면장님의 호통이 어머니의 작품이란 걸 안 것은 몇 년이 지나서였다.
나는 이날 토요산방 도반들과 한절골 얼음축제에 다녀온 게 아니었다. 까까머리 소년이 되어 잠시 고향에 가서 두루마기 한 자락을 태워먹고 온 것이다. 그래, 고향은 이렇게 황홀하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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