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 백일장] 수필1-세뱃돈

박기옥(경산시 와촌면)

'守歲, 努力盡今夕'(수세 노력진금석)은 설날 새벽닭이 울 때까지는 눈을 붙이지 않고 지난해를 성찰하며 맑은 마음으로 새해를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믐날 저녁이면 살며시 몸을 빼내어 장롱 속에 감춰둔 설빔을 입어본다. 무명으로 만든 옷에 물들인 바지저고리와 검정 운동화가 전부였지만.

해마다 설이면 은근히 고민거리가 생긴다. 바로 세뱃돈이다. 내가 어릴 적엔 새벽같이 일어나 부모님을 시작으로 고샅을 돌며 웃어른에게 세배를 다녔다.

지난날은 차려놓은 떡국이나 가래떡에 덕담을 듣는 것이 전부였다. 아름다운 전통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현찰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돈의 위력은 효경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세배문화에까지 깊이 파고들었다. 티 없이 맑아야 할 어린이들까지 돈의 색깔로 표정이 달라진다. 천원짜리는 아예 명함을 내밀지도 못한다. 외면을 당하는 퇴계 선생님에게 괜히 죄스럽다. 적어도 배추 색의 세종대왕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

유치원생 손녀가 "할아버지, 얌전하게 생긴 신사임당 아줌마가 아주 맘에 들더라"며 미리부터 너스레를 떨고 있으니 맹랑하다. 아이들을 기쁘게 하려니 지갑이 울상이고, "할아버지 쫀쫀하다"며 쏘아 대는 손녀들의 눈총을 받아내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 같다.

현금보다는 복 통장을 마련하여 저축정신을 일깨우는 것이 낫겠지만, 올해도 인기 영합에 급급하여 빳빳한 새 돈을 준비했다. 신사임당과 색상이 비슷한 율곡 선생으로.

'빛깔이 비슷하니 속아 넘어가겠지.' 얄팍한 속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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