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휴대전화 고리 속 우상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당대의 젊은 지도자 체사레 보르자를 흠모했다. 마키아벨리의 유명한 역작 '군주론'은 보르자를 모델로 이상적 지도자상을 제시했다. 보르자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사생아로 태어나 이탈리아의 로마냐 지방을 정복하고 지배했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냉혹한 기질을 지녔으며 음모와 술수에도 밝아 정치적으로 유능한 지도자라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평가였다.

미국 포크 음악의 기수 밥 딜런은 영국 웨일스 출신의 시인 딜런 토머스를 숭배했다. 그를 닮고 싶어 로버트 앨런 지머맨이라는 본명도 밥 딜런으로 바꾸었다. 1930년대의 대표적 시인이었던 딜런 토머스는 전쟁을 증오하고 위선에 대항하며 생명력 넘치는 시를 쓰기를 갈망했다. 음유 시인으로 통하는 밥 딜런 역시 딜런 토머스처럼 1960년대 반전운동의 중심 인물로 활동했다. '블로윙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 등 저항적 노랫말을 담은 밥 딜런의 여러 노래는 우리나라의 학생운동에 쓰이기도 했다.

영향력 강한 인물이 앞선 시대나 같은 시대의 인물을 추앙하는 행위는 좋든 나쁘든 사회적, 역사적 파급효과를 낳는다. 마키아벨리는 체사레 보르자를 통해 논란이 따르지만, 당시로서는 새롭게 지도자에 대한 시각을 제공했다. 밥 딜런은 딜런 토머스가 걸어간 길을 갔고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가수 중 한 명이 되었다.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메흐메드 2세도 알렉산더 대왕을 본받고자 했으며 그와 비슷한 19세의 나이로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고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켰다. 나폴레옹에 대해 깊은 애정을 느꼈던 아돌프 히틀러가 유럽 정복을 꿈꾸며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점은 숭배의 나쁜 사례가 될 것이다.

김병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가 휴대전화 고리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부모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사진을 담아 화제다. 휴대전화 고리에 사진을 담는 경우 보통 아내나 자식 사진을 넣는 것과 다르다. 김 내정자는 평소 두 분을 존경하기 때문에 사진을 달고 다닌다고 하지만 박 당선인에게 잘 보이려 한다거나 과잉 충성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들을 만하다. 자연인이라면 모르지만, 장관이 될 사람의 처신으로는 적절치 않으니 흠모하는 인물에 대한 애정은 가슴에만 담아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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