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재환이 하루

"작업 시작합니다."

조금은 톤이 높고 가늘고 어눌한 목소리지만 재환이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고 장난끼도 섞여 있다. 그렇게 휴대폰 조립 작업라인은 재환이가 누르는 컨베이어 벨트 스위치에 따라 시작되고 중단됐다. 작업을 지도하는 교사가 "재환아, 스위치"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똑같은 톤의 목소리가 들린다. "쉬었다 하겠습니다."

지적장애 1급으로,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이곳 구미직업재활센터에 오게 된 재환이는 자신이 다녔던 특수학교 담임교사와 교장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재학 당시에는 말 수도 적고 크게 주목받지도 못하는, 장애인 중에서도 많이 어눌한 학생이었다. 숫자 계산이나 언어구사력도 정확하지 못해 직업생활이 가능하리란 생각은 할 수 없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구미직업재활센터에 오게 된 후로 점진적인 반복훈련과 칭찬, 그에 따른 적합한 일거리를 주자 상황은 달라졌다. 자신이 누르는 스위치에 따라 작업이 시작되고 중단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고, 원장 신부와 함께 매주 월요일마다 실시하는 미사는 자신에게 가장 익숙하고 능동적인 참여가 가능한 '과업'이었다.

작업장에서 일하는 대부분 장애인들이 미사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어렵다. 가끔, 집전하는 신부가 '재환이는 정말 기도를 잘하네!'라는 칭찬을 해주면, 재환이는 참으로 기쁜 얼굴로 주례 신부가 외우는 기도까지 함께 따라하며 즐거워한다. 그런 재환이의 변화는 그동안 한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를 것이라고 알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작업장에서 일하게 된 몇 개월 후 졸업한 학교의 교장과 진로담당 교사들이 방문했을 때, 재환이의 너무나 달라진 모습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어쩜 이렇게 달라졌을까!"

우리는 자주 생각 속에,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틀 속에, 한 사람을 가둬두곤 한다. 그렇게 재빠르게 정리해둬야 시시각각 주어지는 많은 일을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이 180도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사실, 내 편의에 따라 임시로 일정한 틀 속에 정리해 둔 것이니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그것이 우리 마음을 괴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재환이의 경우처럼 기쁜 충격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런 경험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에 진실이 있다. 즉, 내가 알고 있던 것, 반드시 그러하다고 믿는 것이 전혀 다른 사실일 수 있고, 실제로 다르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기쁨으로, 즐거운 경험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김상조(대건 안드레아) 신부, 구미직업재활센터 시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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