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정부조직 개편 신중해야

우리는 1948년 제헌 헌법 이래 줄곧 행정 각부의 설치'조직과 직무를 법률로 정하도록 해왔다. 그래서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각부 등의 중앙행정기관은 정부조직법에 정해져 있는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올 1월 15일 현행 15부 2처 18청의 중앙행정기관을 17부 3처 17청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조직의 사무를 관장하는 행정안전부는 인수위원회로부터 구체적인 개편안을 받아 정부조직법 등 이에 필요한 38개의 법률 개정안을 마련해 1월 28일 인수위원회에 보고했다고 한다.

이어 1월 30일 새누리당 원내대표 이한구 의원 등 145명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는데, 이는 바로 이틀 전에 행정안전부가 인수위원회에 보고한 개정안의 표지에 국회법 규정에 따라 법률안을 발의하는 이한구 의원이 찬성자들과 이름을 연서해서 낸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들이 무려 455페이지나 되는 개정안을 어느새 다 읽어보았는지 그 속독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정의화 정두언 이재오 등 새누리당 의원 아홉 명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찬성자에 포함돼 있지 않다. 그리고 이 개정안 외에도 현재 의원들이 국회에 제출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18건 더 있다. 5년 전에 인수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대대적으로 개편한 정부조직에 대해 또 바꾸자는 의견이 왜 이렇게나 많을까?

개정안에 따르면, 국가 성장동력의 양대 핵심축인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을 창조경제의 원천으로 활용하여 경제부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정부 조직체계를 재설계하고, 국민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안전 관련 업무 기능을 강화하여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부를 구현하는 한편, 각 행정기관 고유의 전문성을 강화하여 행정 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창조적이고 유능한 정부를 구현할 수 있도록 정부기능을 재배치하려는 것이 제안 이유다. 2008년 1월 한나라당 원내대표 안상수 의원 등 130명이 제출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본 이유와 꼭 같이 보통 사람의 언어 수준으로는 무엇을 뜻하는지 헤아리기 어려운 업계 용어로 점철돼 있다.

2008년 개정안에는 당시 박근혜 의원도 찬성자였다. 이들은 최종적으로는 2008년 2월 본회의에서 이 개정안과는 달리 여성가족부와 통일부를 존치하자는 행정자치위원회의 수정안에 찬성했다. 이한구 의원 등의 제안 이유에 따르면, 이들은 5년 전에 전문성이 떨어지며 행정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도 못하게 설계된 정부조직을 담은 법률안을 애써 가결했던 것이 된다. 아니면 그때는 전문성도 갖추고 변화에도 잘 적응하게 하였다고 생각한 정부조직이 실은 의도한 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와 같은 제안 이유로 정부조직을 개편하면 5년 뒤에 이를 또다시 뒤집느라고 법석을 떠는 것이 우리 정치의 경험칙이다. 삼척동자도 금세 알 수 있는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앞의 145명의 의원 중에는 5년 전 해양수산부를 폐지하는 법률안의 가결에 앞장선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지금 개정안은 이를 다시 설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들은 이번에도 별생각 없이 권력의 추가 가리키는 방향을 묵묵히 좇아가지 않을까 싶다. 차라리 이 짐작이 크게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길 기대한다.

정부조직은 대통령 당선인의 것일까? 그의 분부대로 5년마다 크게 뜯어고치는 것을 우리는 비판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가? 정부조직 개편은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인수위원 몇 사람이 당선인의 의중을 받들어 쥐도 새도 모르게 골격과 틀을 정해 관료들에게 사무적이며 기술적으로 살을 붙이게 하고는, 이에 관해 토의나 심의는커녕 한자리에 모여본 적도 없는 자기편 의원들에게 청부해 이심전심으로 또다시 서둘러 마무리하게 해도 정말 괜찮은 것일까? 그래서 이런 개편과정에 쓴소리를 토하는 것이 야심 차게 시작하려는 새 정부의 발목을 붙잡는 일일까?

정부조직은 국민 모두의 것이다. 헌법에서 이를 법률로 정하게 한 것은 국민의 대표들이 국회에서 중인환시하는 가운데 심사숙고해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정하라는 뜻이다. 그래야 5년마다 되풀이하는 자기 부정의 모순을 바로잡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비보다도 더 들지 모른다는 개편 비용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강재호 부산대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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