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대구 달서구 성서산업단지 내 옛 한국폴리텍섬유패션대학(이하 폴리텍대학) 터. 담장이 무너지고 운동장에는 어른 무릎높이까지 풀이 자랐다. 인근 한 회사 대표는 "성서산단 중심부의 금싸라기 땅이 2년 넘게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며 "성서산단의 발전을 위해서 하루라도 빨리 폴리텍대학이 땅을 팔든지 아니면 다른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서산단 내 옛 폴리텍대학 땅이 애물단지다. 대구시는 이 땅을 매입해 용지난을 겪고 있는 성서산단 내 인력개발공간으로 활용하려 하지만 땅 주인인 폴리텍대학과 가격 문제로 2년째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시, 대학 가격협상 난항
폴리텍대학은 섬유'패션 산업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특수 대학으로 1997년 성서산단에 자리를 잡았다. 폴리텍대학은 2011년 대구 동구 이시아폴리스로 이전했다. 이후 2년 가까이 약 2만5천㎡(8천 평)의 대학 부지는 방치되고 있다.
대구시는 이 땅을 사들여 공단 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하이테크 인력개발원'을 계획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인력개발원뿐 아니라 어린이집이나 보육시설 등도 들어설 수 있기 때문에 폴리텍대학이 땅을 넘기기만 하면 성서산단 내 기업들을 위한 좋은 시설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부지 매입가격을 두고 시와 폴리텍대학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시는 폴리텍대학이 성서산단에 들어설 당시에도 용지 가격 할인 등 혜택을 받은 데 이어 이시아폴리스 입주에도 인센티브를 받은 만큼 매입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폴리텍대학 측은 감정가에 따른 용지 매입을 시에 요구하고 있다. 시 산업입지과 관계자는 "우리는 분양 당시 금액에 지금까지의 물가상승치를 포함해 매입하겠다고 제시했다"며 "건물도 다 사겠다고 했지만 폴리텍대학 측에서는 감정가에 따라서 매입해야 한다며 아직 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폴리텍대학이 분양받을 당시 3.3㎡당 40만원 선이었던 용지 가격은 현재 수백만원까지 오른 상태다. 또 땅 주인이 서울의 폴리텍대학 법인이어서 가격 협상 자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를 두고 산단 내 기업들은 대학이 혜택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땅장사를 한다며 비난하고 있다.
경영텍스 이명규 대표는 "안 그래도 땅이 없어서 기업들이 난리인데 대학이 땅을 버젓이 놔두고 있으니 업체들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진다"며 "시가 산단을 위해 활용하려 한다면 대학은 당연히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산단 부지 먹튀 논란 다시 수면 위로
폴리텍대학의 부지 방치가 성서산단 내 다른 기업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싼값에 땅을 분양받은 회사들이 과거 부지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남겨두거나 임대를 하고 있어 용지 가격 상승을 불러온다는 것.
약 포장 기계를 생산하는 JVM은 과거 본사가 성서 1차산업단지에 있었지만 3차단지의 옛 삼성상용차 부지를 3.3㎡당 약 40만원대의 저렴한 가격에 분양받아 본사를 이전했다. 하지만 예전 공장은 그대로 둔 채 5층 건물의 한 층만을 사용하고 있다. 별관 3곳을 포함한 나머지 공간은 9개 다른 기업이 입주해 있다. 실제 'JVM부설연구소'라는 대형 간판이 걸린 별관의 입구에는 다른 회사의 현판이 걸려 있고 공장 입구에도 다른 간판이 함께 걸려 있다. 성서산단관리공단 관계자는 "공장을 여기저기 기업에 임대하는 것에 대해 주변의 기업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JVM 관계자는 "향후 새로운 사업 투자가 발생할 수 있어서 공장을 처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변 기업들은 향후 투자 계획도 없이 임대 장사를 한다는 비난을 하고 있다. 한 기업 대표는 "희성전자 역시 삼성상용차부지를 분양받을 당시 장기적인 투자계획을 근거로 엄청난 땅을 분양받았지만 지금까지 땅을 방치하지 않았느냐"며 "헐값에 다른 땅을 분양받은 기업들은 나머지 불필요한 공장 부지는 필요한 기업에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싼값으로 공장 부지를 분양받은 뒤 기존 고가의 땅을 그대로 유지하는 행동이 최근 분양된 테크노폴리스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에 따르면 현재 테크노폴리스 101만2천905㎡(약 30만7천 평) 부지 중 65만3천619㎡(약 19만8천 평)를 44개 기업이 신청완료한 상태다. 분양을 신청한 기업의 상당수가 성서산단 내에 본사를 두고 있다.
제조업체 정모 대표는 "과연 이들이 기존의 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의문이다"며 "뚜렷한 투자 계획도 없이 무작정 싼값에 땅부터 분양받는 것이라면 정말 필요한 기업에 땅이 가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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