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五斗米(오두미)

요즘 쌀 한 말 값이 대충 4만 5천 원 안팎이라고 한다. 다섯 말이면 어림잡아 20만 원이 좀 넘는다. 만약 '당신의 월급이 쌀 다섯 말 살 정도라면 사표를 쓸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아마도 다섯 말이라도 일하겠다고 대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이 수만 명을 넘는 세상이니 달랑 20만 원 월급 받고 일할 사람이 없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만약 국민의 평균 월급이 15만~30만 원쯤 된다면 쌀 다섯 말도 감지덕지다.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안 되는 저개발국가 빈민들은 두 말 값만 줘도 얼씨구나 할지 모른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바로 우리가 그랬으니까.

월급을 주는 쪽은 임금을 생산 코스트로 인식하고 월급 받는 근로자는 생존을 위한 소득의 개념으로 인식한다. 노사 간의 잦은 임금 마찰은 근본적으로 그런 잣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거기다가 우리는 나와 남 간의 연봉 액수의 차별을 다투는 데는 열을 올리면서도 임금에 따르는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생각을 닫고 산다.

중국 진(晋)나라 시인 도잠의 '쌀 다섯 말' 일화는 오늘날 연봉을 둘러싸고 계층 갈등을 겪는 우리에게 깨우치는 바가 크다. 중국 시인 도잠은 나이 40이 넘어서야 겨우 팽택현(縣)의 지사 감투를 썼으나 석 달도 안 돼 사표를 쓰고 낙향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기보다 더 높은 감찰관이 순시를 나오는 날 참모가 '의관을 갖춰 입고 맞이하라'고 하자 '내 어찌 오두미(五斗米)를 위해 소인배에게 허리를 굽힐 것이냐'고 사표를 던진 것이다. '쌀 다섯 말 월급' 받으려고 하찮은 자에게 머리를 숙이겠느냐는 나름의 기개였다. 오만인지 오기인지를 따지기보다 월급 시비는 재화로서의 값어치를 따지기 전에 월급 값을 하는 '사람됨의 값어치'도 생각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던진다.

국회가 새 정권의 시급한 정부 조직 개편안 심의는 미뤄둔 채 대기업 임원들의 연봉 액수를 공개하도록 하는 법 개정에 나서고 있다. 새누리당이 대선 초반에 내걸었다가 공약집에서는 빼버린 사안이다. 뒤늦게나마 시답잖은 일인 걸 알았기 때문에 뺐을 텐데 새삼스레 또 끄집어내고 있다.

남의 월급 액수와 처녀 나이는 물어보는 자체가 촌스런 매너라는데 기업이 제 식구 월급을 얼마를 주든 국회가 왜 끼어드는지 알 수 없다. 그럴 시간 있으면 지금 당장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문화 예술인과 비정규직의 소득 문제에나 머리 맞대야 옳다.

예술인의 65%가 창작 활동만으로는 월 소득 100만 원도 벌기 힘들다는 조사 통계는 명색 문화의 시대, 문화 강국치고는 여간 낯 뜨거운 문제가 아니다. 근로자들은 노조나 노동단체가 뒤를 밀어주기라도 하지만 예술인들은 정치적 백도 없다. 머리띠 매고 촛불도 들지 않으니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 푸대접받는다. 우는 아이만 젖 주는 정치적 사회 치유법으로 예술인 같은 무저항 저소득 계층에 대한 배려가 홀대되는 것은 명백히 문제가 있다.

예술인들은 좀 별나달 만큼 개성이 강하다. 자존심 다치는 타협은 않는다. 팔리든 안 팔리든 호당 그림 가격 꼬장꼬장 지키며 자신만의 창작 기법을 실험해 나간다. '오두미'에 작가의 영혼을 팔지 않겠다는 오기이기도 하다. 돈 벌기가 쉽잖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은 영화 타이타닉이 2조 원을 벌고 아바타가 3조 원을 버는 예술의 무한 가치를 자긍심으로 생각한다.

그래도 현실은 차갑다. 어느 장관 후보와 비정규 근로자의 월급은 1억 원 대 154만 원, 약 70배 가까운 차이가 난다. 100만 원 번다는 65%의 예술인들과는 100배의 차이다. 그 차이만큼 사회적 책임의 크기를 달리 보여주고는 있는가?

치유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월급 논란의 접근과 해법은 계층 간의 부조화를 조정하기보다는 오히려 계층 간의 괴리감, 박탈감을 부추긴다. 억대 연봉자 명단 공개해서 누구 맘이 편해지나. 기업? 당사자? 저소득층? 박탈감과 괴리감만 커질 뿐이다. '오두미'에 혼을 팔지 않겠다는 예술인, '오두미'에도 어쩔 수 없이 불편과 아픔을 참으며 살아가야 하는 계층의 근본 치유법부터 찾아야 한다. 그런 해법은 없이 남의 억대 연봉이나 시샘하듯 공개하는 일에 빠져 있는 일부 초고소득 국회의원들부터 '오두미'의 정신과 참뜻을 곱씹어보라.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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