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우리에겐 스키 타는 것도 과분했나 봐요. 미안할 정도로 착하고 조를 줄 모르던 아들이 원해 큰맘 먹고 보내줬는데…."
18일 오후 대구 동구의 한 종합병원에서 만난 오윤희(가명'44'여) 씨는 큰아들 조호성(가명'17) 군의 머리에 물수건을 얹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지난달 26일 난생처음 스키를 타러 간다며 신나 하던 조 군이 머리를 크게 다친 것. 조 군은 어떻게 다친 건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급히 대전에 있는 한 병원으로 옮겨졌고, 5시간의 대수술 끝에 겨우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아직 완쾌될지, 또 얼마나 더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남편, 불행의 연속
오 씨에게 불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전의 불행을 극복하고 희망을 가지려는 즈음에 아들에게까지 불행이 닥쳐 더욱 미쳐버릴 것 같다.
1995년 결혼할 때만 해도 오 씨는 자신의 삶에 이렇게 불행이 닥칠 것이라 생각조차 못했다. 오 씨는 남편, 두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고, 계속 단란하게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10년 전 남편이 친구와 동업하던 가구 대리점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남편의 친구는 남편에게 사기를 치고 도망갔고, 오 씨 가족은 졸지에 5억원 상당의 빚을 떠안아야 했다.
금융권에서 빌린 것보다 남편이 개인적으로 여기저기서 꾸어 쓴 돈이 많아 빚쟁이에 시달리는 삶이 시작됐다. 오 씨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정말 험한 꼴도 많이 당하고 욕도 많이 먹었다. 정말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괴로웠지만 그래도 두 아들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고 말했다.
불행은 겹쳐서 온다고 했던가. 또 하나의 큰 불행이 닥쳤다. 남편이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고속도로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차는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졌고, 이때 차량이 폭발하면서 남편은 전신 3도 화상을 입었다. 이후 3년간 남편은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을 해야 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남편이 미라처럼 온몸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더군요. 정말 내 남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처참했어요. 3년 동안 치료받고 2년 재활치료를 한 끝에 이제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지만, 아직도 여름이면 상처 부위에 땀이 나지 않아 열을 배출하지 못해 고통스러워 합니다."
◆이번엔 큰아들
5년간의 치료와 재활치료를 받은 남편은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거제도에 있는 조선소의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나다 보니 자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컸지만 여전히 빚도 많이 남아 있고 두 아들 교육도 시켜야 해 돈을 벌려면 참아야 했다.
두 아들은 착하고 밝았다. 특히 큰아들 조 군은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 이를 눈여겨본 오 씨는 "미용공부를 해 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고, 예상대로 조 군은 어린 나이지만 두각을 드러냈다. 배운 지 얼마 안 돼 미용경연대회에서 상도 곧잘 타 왔고,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오 씨의 마음은 뿌듯했다.
그러던 중 지난달 조 군은 친구들과 스키장에 가겠다고 했다. 미용사자격증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고 경비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걱정했지만 교통비와 장비 대여료 등을 합쳐도 얼마 되지 않았고 또 자격증 시험 전에 기분 전환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만 허락하고 말았다.
오 씨는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보호자로 같이 따라나섰고, 신나게 스키를 즐기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오 씨의 기분도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기 한 시간 전인 오후 3시쯤, 전화가 왔다. 조 군이 쓰러졌는데 눈을 뜨지 않는다는 거였다. 병원으로 실려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오 씨는 막막했다. 구급차의 대원도 "아마 살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오 씨는 이런 상황이 모두 자기 탓인 것만 같아 가슴을 쳤다.
"구급차 안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어요. 남편도 이야기를 듣고 '다 자기 탓'이라며 자신을 원망했어요. 난 거기에 '아니다, 내 탓이다'며 남편을 달랬고요. 스키장이라는 곳이 우리 형편에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곳이라 아들 기 한번 살려주려고 보낸 건데…"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생활도 빠듯한데 치료비 막막
조 군은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서 5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고 대구의 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조 군은 두개골의 오른쪽 부분이 수술로 인해 잘려나갔고 오른쪽 손과 발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태다. 오 씨는 아들이 치료받는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
"치료를 받을 때 호성이가 짜증을 낼 때가 많아요. 마음으로는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은 움직여지지 않으니까 그걸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 성장기에 있는 아이니 빨리 치료 효과가 날 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오 씨가 아들의 치료를 지켜보는 과정만큼 힘든 것은 지금부터 들어갈 치료비다. 대전의 대학병원에서 나온 수술비만 360만원으로 신용카드 결제로 해결하기는 했지만 결제일이 돌아올 때 어떻게 돈을 내야 할지 걱정이다.
게다가 조 군의 머리에 두개골을 삽입하는 재수술도 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들 수술비와 치료비, 입원비 등 모두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오 씨 부부가 한 달에 버는 돈은 200만원 남짓이지만 치료비를 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업 실패 후 남은 빚이 아직 2억원 정도 남아 있는데다 남편이 거제도에 살면서 드는 생활비, 대구에서의 생활비로도 빠듯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 씨가 하고 있는 웨딩 도우미 일은 결혼식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수입이 많은 차이를 보이는 등 고정적이지도 않다. 대출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남편이 신용불량자라 남편 명의로 대출받는 것은 불가능한데다 오 씨 명의로 대출받는 것 또한 남편의 신용불량 때문에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나 차상위계층을 신청하려고 했지만 조건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딱지를 맞았다.
오 씨는 지난 10년 동안 닥쳐온 불행을 수습하고 새 삶을 시작할 기회가 머지않아 오나 했지만 아들의 갑작스런 사고로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오 씨는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고 스스로를 세뇌하고 있다.
"엄마로서 나약해질 순 없어요. 고생하는 남편과 두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다시 한 번 일어날 겁니다.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라 믿고 견뎌낼 겁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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