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박 당선인 인사에 감동이 없다

취임을 닷새 앞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를 다시 언급하는 것은 '지면 낭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출범도 하지 않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기에는 아직은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박 당선인의 인사에 대한 소회를 밝히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 인사에 신경을 많이 썼던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그는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을 누구보다 많이 했지만 정작 '인사가 망사(亡事)'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대통령이었다. 인사 발표 직전까지 언론의 하마평에 유력하게 오르내리던 인사도 신문에 나면 가차없이 빼버리는 바람에 고위 공직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신문사에 사정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는 '머리는 빌리면 된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적재적소에 인재를 발탁해서 쓰지 못했다는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국민들이 그런 김 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간파했을 때는 이미 임기 말이었다.

대통령의 인사는 때로는 감동을, 때로는 좌절을 가득 안겨준다.

취임하는 대통령마다 인사를 통한 '대탕평'과 '지역 화합', 혹은 '적재적소' 인사를 공언해 왔지만 결과는 어느 정부 할 것 없이 지역 편중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고 회전문, 돌려막기 인사에 그쳤다.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인사 실무를 도맡아 온 김명식 인사기획관은 이 대통령의 퇴임을 앞둔 지금에서야 "인사는 자격이 있는 적당한 사람을 골라서 쓰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통치 철학을 구현하고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인사 정치'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대통령이 자신과 호흡을 맞춰 일할 수 있는 편한 사람을 고르는 것이 인사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박 당선인이 조각을 마치고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인선을 마무리하자 시중에서는 묘한 '반전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박 당선인을 지지했던 51.6% 진영에서 강한 배신감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반응들이 터져 나오고 있는 반면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멘붕' 상태에 빠져 있던 48% 진영에서 '그것 봐라'며 자신들이 반대했던 박 당선인에 대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들뜬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윤창중 대통령직 인수위 대변인 기용에서부터 19일의 청와대 수석비서관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인사 발표에 대해 시중에서 잘했다며 박수 치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특히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등 박 당선인을 청와대에서 보좌해야 할 사람들 중에서 자기 목소리를 갖고 있는 인사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은 박 당선인이 주도한 '나 홀로 인사'가 보여주는 극단적인 모습이라는 점에서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반응이었다.

사실 15년 동안 국회의원을 지낸 박 당선인이 보여준 정치적 리더십은 소통과 조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인사는 철저하게 배제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박 당선인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이상돈 교수와 이준석, 안대희 씨의 모습을 보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죽했으면 홍준표 경남지사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은 당선된 날로부터 레임덕이 시작되는데 박 당선인은 국정을 장악하기 위해 자기 사람을 쓸 수 밖에 없다"며 "수첩에 있는 사람만 쓸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의 예견은 들어맞고 있다. 친박계를 기용하면서도 허태열 비서실장 내정자와 이정현 정무수석 내정자 등 고분고분한 인사만 기용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인사를 하다 보니 검증은 소홀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당선인이 지명하는 사람을 쓰겠다고 하면 검증팀이 혹독하게 검증할 수가 없는 구조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참여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검증이라는 것은 혹독하고 말고가 아니라 고위 공직 후보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상식의 문제"라고 말했다.

박 당선인의 인사를 통한 국민 소통 무대가 벌써 막을 내린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대를 접기에는 너무 이르다. 박 당선인이 '박근혜 정부의 성공은 국민들로부터 박수받을 수 있는 인사(人事)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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