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와 서양 아저씨가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제멋대로인 버스가
한참 후에 왔다
-왔데이!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말을 영어인 줄 알고
눈이 파란 아저씨가
오늘은 월요일이라고 대꾸했다
-먼데이!
버스를 보고 뭐냐고 묻는 줄 알고
할머니가 친절하게 말했다
-버스데이!
오늘이 할머니의 생일이라고 생각한
서양 아저씨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해피 버스데이 투 유!
할머니와 아저씨를 태운
행복한 버스가
힘차게 떠났다
-월간 (1980년 4월호)
참으로 절묘한 소통이다. 영어 '영' 자도 모르는 할머니와 한국어 '한' 자도 모르는 서양 아저씨가 대화를 하다니. 서로 제 맘에 겨워 잘도 받아넘긴다. 서로 다 알아들었는데 점입가경 삼천포행 버스다. 유쾌하게 흔들리며 가는 행복 버스다.
뉴질랜드 아가씨가 한국말을 배우겠다고 안동에 온 적이 있었다. 본토 발음 서울말 두고 굳이 안동말을 배우겠단다. 언어는 서로 소통하면 된다는 고집이었다. 몇 년 뒤 그녀는 말끝마다 '껴, 껴' 하면서 한국 하고도 안동말을 배워서 돌아갔다. 지금도 어디선가 한국 사람을 만나 '껴, 껴'거릴 그녀 생각하면 슬쩍 웃음이 난다.
참 말 많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얼마나 서로 소통하고 사는지. IT 강국이 무색하게 불통, 먹통, 뿔뿔이 제 갈 길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서로 통하지 않더라도 이 시처럼 막 행복해지는 세상 어디 없을까나.
시인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