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상학의 시와 함께] 해피 버스데이-오탁번(1943~ )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와 서양 아저씨가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제멋대로인 버스가

한참 후에 왔다

-왔데이!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말을 영어인 줄 알고

눈이 파란 아저씨가

오늘은 월요일이라고 대꾸했다

-먼데이!

버스를 보고 뭐냐고 묻는 줄 알고

할머니가 친절하게 말했다

-버스데이!

오늘이 할머니의 생일이라고 생각한

서양 아저씨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해피 버스데이 투 유!

할머니와 아저씨를 태운

행복한 버스가

힘차게 떠났다

-월간 (1980년 4월호)

참으로 절묘한 소통이다. 영어 '영' 자도 모르는 할머니와 한국어 '한' 자도 모르는 서양 아저씨가 대화를 하다니. 서로 제 맘에 겨워 잘도 받아넘긴다. 서로 다 알아들었는데 점입가경 삼천포행 버스다. 유쾌하게 흔들리며 가는 행복 버스다.

뉴질랜드 아가씨가 한국말을 배우겠다고 안동에 온 적이 있었다. 본토 발음 서울말 두고 굳이 안동말을 배우겠단다. 언어는 서로 소통하면 된다는 고집이었다. 몇 년 뒤 그녀는 말끝마다 '껴, 껴' 하면서 한국 하고도 안동말을 배워서 돌아갔다. 지금도 어디선가 한국 사람을 만나 '껴, 껴'거릴 그녀 생각하면 슬쩍 웃음이 난다.

참 말 많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얼마나 서로 소통하고 사는지. IT 강국이 무색하게 불통, 먹통, 뿔뿔이 제 갈 길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서로 통하지 않더라도 이 시처럼 막 행복해지는 세상 어디 없을까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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