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삼력의 시네마 이야기] 영화에서 '주제'란 무엇인가?

영화의 시나리오를 창작하는데 '주제'가 이야기의 출발점에 해당하므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은 창작 교육 현장과 영화 분석 매체에서 늘 강조되는 내용으로 칼 이글레시아스는 "위대한 작품들은 뚜렷한 주제를 갖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주제의 중요성은 알렉스 엡스타인의 주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는 관객들이 영화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바로 '주제의식'과 직결된다고 본다.

그런데 필자가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거나 기존의 연구 자료를 살펴보면서 느낀 아이러니는 주제의 중요성 자체가 강조되는 것에 비해 주제 자체의 정의나 주제의 유무 판단이 창작 과정이나 분석 과정에서 빠져 있다는 것이다. 가령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 가운데는 주제와 소재를 혼동, 소재를 주제로 보고 창작을 진행하여 완성된 결과물에 아예 주제가 없거나 주제 자체는 있으나 그 주제가 이야기로 다뤄지기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를 볼 수 있다.

주제의 사전적 정의는 '예술 작품에서 지은이가 나타내고자 하는 기본적인 사상'이다. 그런데 로버트 맥기는 "주제라는 단어가 작가들에게 점점 뜻이 분명치 않은 용어가 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을 따르면 사랑, 청춘, 동성애와 같은 단어로 이루어진 내용은 장르나 설정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작가인 하유상은 이를 이야기 안에 극적 의미가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주제 이전의 '소재'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래서 로버트 맥기의 의견에 따르면 진정한 주제는 문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을 다수 집필한 노다 코고 역시 같은 의견을 내놓는다. '동정'이니 '사랑'이니 하는 것은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의 의견대로라면 여러 번 영화화 된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제는 '사랑'이나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 아니라 적어도 "신분을 초월한 사랑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정도의 문장이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데이비드 하워드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으로 명쾌하게 정의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작가의 시각이 단순히 '가치 판단'의 영역으로 국한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그는 영화의 주제는 예술과 오락의 범주 안에 있는 '인간 딜레마'의 양상이기에 선전의 범주에 놓이게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면 '사랑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와 같은 작가 개인의 가치 판단에 해당하는 내용은 주제가 되기 어렵다.

이처럼 주제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적어도 시나리오를 창작하겠다면 소재를 주제로 오판하거나 주제가 부재한 경우는 없어야 할 일이다.

영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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