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이 대출자가 부담한 근저당권 설정 비용을 반환해야 한다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와 금융권이 긴장하고 있다. 이번 판결이 유사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 근저당설정비 반환하라
서울중앙지법 민사 15단독 엄상문 판사는 20일 장모 씨가 신한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근저당 설정비 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엄 판사는 "해당 대출상품설명서 내용만으로는 근저당권 설정비용을 누가 부담할지에 대한 실질적 개별약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이번 사안은 약관이 무효이거나 관련 약정 자체가 없는 경우에 해당된다. 담보권자가 원칙적으로 설정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관련 법령 취지에 부합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비용은 은행이 부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근저당권 설정비는 담보대출 때 발생하는 부대 비용으로 통상 1억원을 대출받을 때 70만원 정도가 든다. 장 씨는 2011년 11월 대출약정 시 근저당권 설정 비용 70여만원을 자신이 부담한 것이 부당하다며 돌려 달라는 소송을 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장 씨를 대리한 법무법인 태산 측은 "이 사건은 계약서 등을 기초로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확인한 결과다. 은행은 설정비용을 고객이 부담하기로 합의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합의가 없었던 경우가 대부분이고 계약서에 체크했다 하더라도 은행원 지시에 따른 형식적인 절차"라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은 반환 책임이 없다며 은행의 손을 들어준 유사 소송 판결과 상반된 것이어서 앞으로 상급심 판단이 주목된다.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법은 대출자 360여 명이 시중은행 6곳을 포함한 금융기관 40여 곳을 상대로 낸 집단 소송에서 "비용부담 합의는 개별약정에 해당되며 불공정한 법률행위라는 입증이 부족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한 바 있다.
◆금융권 당혹
반면 신한은행은 항소 의사를 밝혔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기존에 승소했던 소송과 같은 사안인데 이번 판결만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 항소해서 상급심의 판단을 받겠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권들도 판결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지난해와 올해 초 선고된 15건의 관련 소송에서 은행이 모두 이겼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사건처럼 계약서상에 수기 표시가 없는 경우에도 은행이 승소했다. 앞서 판결한 재판부 측은 약관에 의해 근저당권 설정비를 고객에게 무조건 부담시킨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선택권을 줬으며 고객들은 이 때문에 금리 감면 혜택을 봤다는 점을 들어 원고 패소 판결했다.
금융권은 이번 판결이 미칠 파장에 주목하고 있다. 은행뿐 아니라 저축은행, 보험사 등을 대상으로 한 비슷한 소송 판결이 줄줄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앞으로 있을 선고에서도 은행이 승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다만, 이번 판결로 고객들과 법정 싸움을 벌이는 기간이 길어지고 집단소송이 남발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