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국가 북한/ 권헌익'정병호 지음/ 창비 펴냄
3대 세습을 단행한 북한의 정치체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책 '극장국가 북한: 카리스마 권력은 어떻게 세습되는가'는 '정치예술'이 북한의 체제유지와 세습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분석한 책이다. 더불어 북한사회가 총체적으로 '정치예술'의 집합체인 '극장국가'임을 보여주는 책이다.
20세기 카리스마 정치가들(스탈린이나 마오쩌둥)과 비교해 볼 때 김일성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이들은 모두 해방정치운동에서 일정한 업적을 이루었고, 사회적 위기 속에서 급진적 사회변혁을 위해 대중동원에 집중했다. 그러나 카리스마 권력은 사회가 격변을 수습하고 일상의 질서로 돌아가면 사라지게 된다. 냉전시대 국가차원에서 숭배받던 대부분의 카리스마적 인물들 역시 역사와 함께 퇴장했다. 북한만이 예외였다. 북한은 어떻게 카리스마 권력의 수명을 뛰어넘었을까.
저자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카리스마권력의 생명 연장을 위해 놀라운 탄력성을 보였다고 분석한다. 그 수단이 바로 연극, 노래, 영화, 군중집회, 대규모 행사와 다양한 선전도구, 사상 보급이었다.
북한이 자랑하는 아리랑 공연은 일제의 강압에 고향을 등진 유랑민들이 혁명적인 지도자를 만나 민족해방을 달성하고, 희망과 열정을 회복한다는 이야기다. 뮤지컬과 영화로도 만들어진 '꽃파는 처녀'와 '피바다' 역시 식민지배의 폭력으로 혈육을 잃고 천애고아가 된 아이들이 빨치산 지도자 한별(김일성을 나타내는 한편 해방을 향한 민족의 유일한 희망)을 만나 혈육을 대신할 가족적 유대감과 도덕적 소속감을 발견하고, 빨치산 대원이라는 혁명가족에게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깨우친다는 내용이다.
즉 북한에서 '빨치산 활동'은 강력한 외부세력에 맞서는 전투적인 행위인 동시에 부성애와 효성이라는 가족적 가치를 포함하는 거룩한 행위가 된다. 북한은 서적, 방송, 정치집회, 대규모 공연을 통해 지속적으로 '빨치산 활동'을 통해 충과 효의 가족적 가치를 주입함으로써 김일성을 민족의 지도자인 동시에 아버지로 만들었다. 따라서 아버지 김일성을 따르지 않거나 그의 지도력에 의심을 품는 행위는 민족에 대한 배신인 동시에 가족에 대한 배신에 해당한다. 실제로 19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북한 사람들 대부분은 아버지를 잃은 자식의 심정으로 통곡했다.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의 위상은 죽은 국부(國父)에 대한 효성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수행하는 데서 나온다. 김정일은 상주(喪主)로서 국가 전체가 관여하는 장례행사를 이끌었다. 북한 사회는 가족공동체이므로 김정일이 죽은 생물학적 아버지에게 지극한 효성을 발휘할수록 인민을 잘 보살피는 행위가 된다. 또한 김일성에게서 김정일에게로 권력이 이양되는 것은 생물학적 혈통관계에 기반을 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북한사회를 정치적 가족관계로 묶어 두는 정책적 조치이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사회에 몰아닥친 농업생산의 감소, 생산과 분배체제의 붕괴, 경제와 행정의 마비는 대규모 인명손실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사회적 재앙은 김일성의 죽음과 맞물려 전 국민을 정신적 위기감과 장기간의 집단애도과정으로 몰아넣었다. 북한 지도부는 이를 잘 이용했으며, 북한 주민들은 국부를 잃은 마당에 '밥투정'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1930년대 선조 빨치산처럼 마땅히 고난을 견뎌야 했다. 그것이 '고난의 행군'이었다.
북한은 김일성 개인 우상화에 이어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을 독립운동가로,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을 항일 여성영웅으로 내세움으로써 가족정치, 유격대정치, 총대가문을 북한 주민들의 뇌리에 상식처럼 심었다. 이런 과정에 동원된 공연과 저술, 사상교육 등은 예술 활동인 동시에 정치행위였다. 이것이 카리스마 권력을 이어온 힘인 것이다.
지은이 권헌익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구소련 시베리아 원주민 수렵사회 환경의 역사에 대한 연구로 인류학 박사학위를, 정병호는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일본의 교육과 소수민족에 대한 연구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340쪽, 2만원.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