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하찮은' 소쿠리·빗자루·배추… '핫 작가' 최정화 개인전

실제로 사용됐던 교통경찰 마네킹과 직접 만든 배추를 함께 전시한다.
실제로 사용됐던 교통경찰 마네킹과 직접 만든 배추를 함께 전시한다.
최정화는 대구미술관 어미홀에서
최정화는 대구미술관 어미홀에서 '연금술'전을 연다. 전 세계를 무대로 일상적인 소재의 전혀 색다른 문법의 예술세계를 펼쳐온 그가 대구미술관에서 보여주는 전시는 재미있고 흥미롭다. 작품 '카발라'를 배경으로 서 있는 최정화 작가.

대구미술관 어미홀에 높이 18m, 너비 10m로 소쿠리 기둥들이 섰다. 수천 개의 붉은색과 녹색 소쿠리는 눈부시게 하찮은 것들이 어떻게 미술관 한가운데로 당당히 들어올 수 있었는지 그 존재 자체로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보고 한 작가는 "드디어 대구미술관 어미홀을 이기는 전시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최정화 작가의 작품 '카발라'.

최근 세계 미술계의 가장 '핫'한 작가 중 한 명인 최정화가 국내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26일부터 6월 23일까지 개인전 '연금술'전을 연다. 전 세계 각종 비엔날레, 해외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가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은 작가는 그동안 발표해왔던 작품들을 대구미술관에서 일제히 선보인다. 미술관에서 한창 작품을 설치 중인 작가를 만났다. 그는 '핫'하면서도 '쿨'했다.

소쿠리의 색감과 조형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새삼 감탄하게 된다. 어느 집이든 한두 개쯤은 있을 법한 이 소쿠리는 예술가의 손을 거치니 작품이 된다. 수천, 수만 개의 소쿠리들은 하나하나 엮여 마치 기념비 같다. 이처럼 경쾌한 미술작품 아래에 서 있으니 마냥 행복하다. 심각하지 않아서 좋고, 일상적인 소재라 거리가 한층 가깝다.

작가는 1991년 소쿠리에 '꽂혔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어요. 색감도, 조형도 좋아서 뭘 할 수 없을까 내내 고민했죠. 소쿠리는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정말 하찮은 거잖아요? 화학물 덩어리이기도 하죠. 이 화학물 덩어리를 예쁘게 보여주면서 아름다움의 독성에 대해 이야기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소쿠리를 18m 높이로 쌓은 작품의 이름은 '눈이 부시게 하찮은'. 작가의 작품에는 정말 '눈이 부시게 하찮은' 존재들이 즐비하다. 제사상에 오르는 설탕과자, 플라스틱 로봇 가면, 짚신, 대바구니, 빗자루, 상, 의자 등 시장이나 벼룩시장에서 모은 '상품'들이 작가를 거치면서 '작품'이 된다. 배추 모형, 꽃, 탑 등은 직접 만든다. 작가는 과연 어떤 것들을 모으는 걸까.

"유난히 나의 관심을 끄는 것들을 모아놓고, 거꾸로 생각하죠. 나와 그 물건이 만났을 때의 번쩍임, 그것을 전달하고자 하는 게 제 작품이에요. 일종의 '발견'이기도 하죠."

그는 자신의 삶과 작업의 키워드를 '생생, 싱싱, 빠글빠글, 짬뽕, 빨리빨리, 엉터리, 색색, 부실, 와글와글'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구미술관 전시에도 그는 흥미로운 작품을 대거 선보인다.

사실 그는 '미술작가' 이외에도 디자인, 건축, 사진, 연출과 기획, 공연, 영화 미술감독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이제 그는 '나의 직업은 최정화입니다'라고 소개한다. 그물코처럼, 다양한 모습들이 모여 하나의 최정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최정화는 '핫'한 작가다. 독특한 개성으로 늘 이슈를 몰고 다니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세계 무대에 연일 초대되는 것도 그렇다. 그는 전 세계를 무대로 지난해 19개 프로젝트를 했고, 올해 15개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그는 자신을 '핫 앤드 쿨'(Hot & Cool)이라고 소개했다.

"제 작품의 장점은 친화력 아닐까요? 거리감이 없잖아요. 화려한 큰 꽃, 부풀려진 형태, 풍선 등은 어느 나라에 상관없이 통하는 소재잖아요. 일상적인 소재."

그는 자신의 작품을 '미술관 삐끼'라고 말했다. 미술의 외적 기능을 홍보하고 교육하는 미술로서의 역할 말이다. 베니스비엔날레에는 본격적인 전시 몇 달 전에 설치할 것을 제안했고, 덕분에 그의 작품은 '삐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예술에 대한 또 다른 문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늘 흥미롭다. "기존 예술 문법이 어렵잖아요. 그래서 다양성과 여러 가지 다름을 추구하니 사람들이 좋아해줬어요."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태도는 치밀하게 엉성하고, 소재는 원시와 바로크'라고 말했다.

그는 꽃 모양의 풍선을 부풀리거나 실물 크기보다 큰 교통경찰 마네킹을 전시장에 설치했다. 실제의 권위와는 아무 관계없는 허상은 대구미술관 엘리베이터에서 관객들을 맞이한다.

관객들이 직접 만드는 작품도 있다. 관객들은 형형색색의 자석으로 쌓기도 하고, 허물기도 한다. 고정된 것 없이 '흐르고, 바뀌고, 달라져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을 담은 작품이다.

특히 야외 공간에 설치되는 거대한 붉은 꽃인 '레드 로투스'는 이곳 대구미술관에서 장례식을 치르는 깜짝 이벤트를 연다. 몇 차례 전시가 되면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는 이 설치작품은 대구미술관에서 마지막 전시를 갖는다는 의미다.

대구에서 열흘 가까운 작품 설치 기간 동안 작가는 지독한 감기 몸살에 걸려 고생이 많았다. 늘 독특하고 튀는 행보를 해온 그가 국내 첫 미술관 전시를 앞두고 대구 전시에 대한 '예감'은 어떨까.

"설치하는 동안 일하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좋아하면 그 전시는 성공한다는 저만의 징크스가 있어요. 이번에도 대구미술관에 계시는 아주머니들이 아주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이번 전시는 일상과 예술의 격차를 줄이고 예술가 역시 '아무나, 누구나'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모든 것이 옳고, 답은 없죠."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un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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