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전통 지키기'의 딜레마

얼마 전 설 명절이 지나고 아줌마들의 하소연이 늘어졌다. 시댁을 오가느라 고속도로에서 고생했다는 사람, 손위 손아래 동서 때문에 스트레스가 말이 아니었다는 사람, 남편의 친정에 대한 차별로 속상했다는 사람 등 그렇게 명절 고난 스토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누군가가 '난 설 명절 동안 해외여행을 다녀왔어' 하는 한마디에 아줌마들의 부러운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요즘 세대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구 세대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는 부분이다. 실제로 명절 연휴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번 설에는 연휴가 상대적으로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26만 명이 해외여행을 떠났으며, 연휴가 길었던 지난해 설에는 59만 명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립고 정다운 가족들이 만나는 즐거운 명절. 하지만 며느리들에게는 '즐거운'이라는 수식어에 절대로 공감할 수 없는 것이 명절이다. 한국 주부들에겐 '명절 증후군'이 피로, 체중 변화, 위장 장애, 두통 등을 동반하는 하나의 직업병이 됐다. 오죽하면 '명절'(名節)이 스트레스 탓에 수명이 줄어드는 '명절'(命切)이라는 농담까지 생겨났을까. 최근에는 남편들의 명절 스트레스 또한 만만찮다는 이야기들도 나오고 있다. 명절이면 어머니와 마누라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고, 명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내의 명절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남편들의 고충도 알아줘야 한단다. 그러다 보니 매번 명절만 지나면 이혼이 급증하고, '명절 이혼'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어쩌다 우리 고유의 명절이 다가오는 게 두렵고 명절 보내기가 모두에게 힘든 그런 전통이 되어버린 걸까? 우리의 전통이란 게 요즘 세대들에게는 더 이상 공감될 수 없는 구닥다리가 되어버린 것일까?

얼마 전 경상북도의 '전통 한옥 숙박 체험' 이용객이 급증하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최근 관광 시장의 웰빙 트렌드와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고택이나 종택에서 머물면서 우리의 전통문화와 전통 놀이를 체험하고자 하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전통 한옥을 어디까지 현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전통 한옥 내 서구식 주방 시설과 화장실, 그리고 에어컨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그런 껍데기만 한옥에서의 체험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다. 자연 채광과 환풍, 전통 부엌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체험하는 것이 전통 한옥 숙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정한 경험이라는 주장이다. 즉, 우리 '전통'의 의미를 어디까지 둘 것인가가 문제이며, 전통과 현대화의 딜레마인 것이다.

'전통 지키기'의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원래의 의미에 충실한 접근일 것이다. 명절의 원래 의미는 흩어져 사는 가족 친지들이 즐겁게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날이라는 것이지, 과거의 형식을 따르기 위해 요구되는 며느리들의 과도한 가사 노동이 핵심은 아닐 것이다. 또한 우리의 역사문화와 전통을 이해하기 위해 선조들의 불편한 생활을 반드시 경험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 사진이나 문헌 또는 견학을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전통 한옥의 구조적 불편함 정도는 감수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요즘의 기성세대를 흔히 '낀 세대'라고 부른다. 낀 세대는 늙은 부모를 봉양하는 부담은 물론, 경제적 자립을 이루지 못한 자녀를 뒷바라지하는 짐까지 짊어지는 세대며, 동시에 부모를 모시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한테 버림받는 최초의 세대라는 것이다. 또한 직장에서도 윗선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상명하복이 당연한 세대이자 후배들에게 이런 것을 요구했다가는 바로 '구악'(舊惡) 소리를 듣게 되는 비애를 가진 세대인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역할이 있다. 윗세대의 전통을 현대사회에 맞게 잘 다듬어서 다음 세대로 전달해 주어야 하는 세대 역시 바로 그들이다. 우리의 전통이 사라지지 않도록, 그러나 전통이 가지는 불편함으로 인해 후손들이 외면하지 않도록 잘 전달해 주어야 한다. 우리의 전통을 무시하고서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없다. 단지 그 형식에 치우쳐 본질을 잊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미경/대구가톨릭대 교수·호텔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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