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좋은 질문을 던지는 힘

지난주 금요일 강원도 동해의 광희고등학교 학생들이 대구를 방문했다. 교내 '작가 탐방 동아리' 학생들로 전국의 작가를 만난 뒤 '탐방기'를 출간할 계획이라고 했다.

학생들은 "(내가 쓴) 소설 '능소화'를 읽고 감동을 받았다. 어디까지가 사실이냐"고 물었다. 평소라면 소설 작품의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묻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차로 5시간이나 달려온 손님들인 만큼 대접을 해야겠다는 마음에 '편지 한 장 빼고는 다 허구다'고 답했다.

소설 '능소화'는 1998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택지개발공사 중에 발견된 420여 년 전 남자의 무덤에서 나온 아내의 편지('원이 엄마'의 편지로 알려져 있음)를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아내는 남편이 30대 초반에 죽자, 출상 전날 '원이 아버지께'라는 제목의 편지를 써서 남편의 관에 넣었다. 남편과 함께 행복했던 날들에 대해, 이제 홀로 자식을 키우며 살아갈 날들에 대해 쓴 편지였다.

학생들은 '편지 한 장 빼고 나머지는 허구다'는 대답에 실망하는 눈치였다. 소설 내용이 모두 사실일 것이라고 혹은 사실이기를 바랐을 테니 실망이 컸던 모양이다.

똑같이 한 편의 소설 혹은 영화를 봤는데 한쪽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다른 한쪽은 '뭘 그러냐? 그래 봐야 소설인데'라고 반응했다면 어느 쪽이 잘 읽은 것일까.

건강한 몸을 가꾸는 데 운동이 필요하듯, 영혼을 가꾸는 데는 감동이 필요하다. 영혼의 감동은 분석이 아니라 몰입할 때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소설이나 영화를 두고 '그래 봐야 뻥이다'고 생각한다면 감동할 수 없다.

학생들에게 이렇게 덧붙였다.

"1998년에 이응태의 무덤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들 부부의 사연을 몰랐을 것이다. 편지를 읽고 나서야 우리는 그들을 알았다. 남편을 잃고 그토록 애절한 편지를 썼던 아내가 그 후에는 편지를 쓰지 않았을까. 아닐 것이다. 아내는 이후에도 많은 편지를 썼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 편지를 발견하지 못했을 따름이다. 그러니 내 소설적 상상은 허구이나 진실을 향하고 있다."

교과서를 통해 우리는 질문에 답하는 능력을 기르고, 문학과 예술을 통해 질문하는 힘을 기른다. 쓸모 있는 질문은 감성적 몰입에서 나온다. 정답을 대는 지식만큼 좋은 질문을 던지는 상상력 역시 가치 있다. 광희고 학생들은 책을 제대로 읽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