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 모자가… 세종대왕의 '익선관'?

임란때 일제에 약탈된 유물…경북대 이상규 교수팀 공개

경북대 연구팀이 세종대왕의 유물로 추정하고 공개한 익선관. 이 유물은 국내 한 컬렉터가 지난해 일본에서 구입해 들여온 것으로 안에 훈민정음 활자본이 들어 있다. 연합뉴스
경북대 연구팀이 세종대왕의 유물로 추정하고 공개한 익선관. 이 유물은 국내 한 컬렉터가 지난해 일본에서 구입해 들여온 것으로 안에 훈민정음 활자본이 들어 있다. 연합뉴스

세종대왕이 쓰던 '익선관'(翼善冠'왕이 정무를 볼 때 쓰던 모자)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모습을 드러내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 약탈됐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익선관은 특히 그 안에 훈민정음의 제작과정을 적어놓은 '제자해'(制字解)를 담고 있어 향후 진품으로 확인될 경우 그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경북대 이상규 교수(국어국문과)팀이 27일 공개한 이 익선관은 높이 27㎝, 둘레 57㎝의 천 소재로 보존상태가 양호해 보인다. 납작하게 접혀 있지만 머리에 쓰면 높은 뒤턱과 앞턱이 둥글게 튀어나오게 돼 있다. 외피는 짙은 황색 바탕이며 금사(金絲)로 임금 왕(王)자와 모란 문양을 곳곳에 수놓았다. 이마 부분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뜻의 '만'(卍)자와 용, 약통 문양이 정교하게 수놓여 있다.

내피는 모기장처럼 얇고 성긴 붉은색의 천이다. 닳아 헤진 천 안으로는 'ㅁ' 'ㄹ' 'ㅇ' 등 한글 자모(字母)가 적힌 한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익선관은 한 개인 소장자가 일본에서 매입, 이 교수에게 연구를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이 익선관이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약탈된 궁중유물, 그중에서도 세종대왕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우선 용의 발가락 개수. 이 익선관에 수 놓인 용의 발가락이 네 개인데,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 26년(1443년) 명나라로부터 오조용복(五爪龍服)을 하사받기 전에는 사조용의(四爪龍衣)를 입었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용의 발가락이 네 개이기 때문에 세종 26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여기에 모자 내부의 고문서가 훈민정음의 해례본(解例本'1446년 완성)과 유사한 제자해를 담고 있는 점을 종합해보면 이 익선관의 주인이 세종대왕이라는 풀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의병 정경운이 남긴 '고대일록'(孤臺日錄)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궁중유물이 왜군에 약탈됐다고 기록돼 있는데, 이 익선관도 당시 약탈당한 궁중유물의 한 가지라고 이 교수는 밝혔다.

이 교수는 "소장자가 익선관을 국가에 기증할 뜻을 밝힘에 따라 익선관의 정확한 제작 연대와 고문서 해독을 위해 해체 등 분석작업을 벌일 것"이라며 "세종대왕의 익선관으로 확인될 경우 희귀한 조선 초기 궁중의 복장 유물이라는 점, 훈민정음 해례본 이전의 해례본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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