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사랑 대구자랑] 인재 키우고 모여드는 도시를

국민소득 100달러에 불과했던 가난한 우리나라가 반세기란 짧은 기간에 개발도상국들이 부러워하는 2만달러 선진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 산업 근대화의 견인차인 섬유 산업이 있었다. 특히 대구경북의 섬유 산업이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구경북의 산업 시설은 지역 기업가들의 열정적 도전과 창조 정신에 힘입어 6'25 피해를 딛고 조기에 재건됐고 사통팔달의 지리적 여건 덕분에 1960년부터 본궤도에 진입하기 시작한 한국 산업 근대화의 심장부 역할을 수행해 왔다. 당시 지역의 선도기업은 '제일모직' '코오롱' '대한방직' '내외방직' '삼호방직' 등이었으며 '동국' '성안' '삼공' 등 역동적인 중견기업들도 무수히 많았다.

이들은 생산 제품의 절반 이상을 국외에 판매, '수출 입국'이라는 국가 정책에 적극적으로 이바지함으로써 당시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던 수출 100억달러를 조기에 달성케 한 주역으로서의 자긍심도 매우 높았다. 당시 지역 산업 시설의 위상은 박정희 대통령의 제일모직(1961) 및 코오롱(1969) 방문 등 국가 지도자 및 국외 귀빈의 산업 시찰 시 반드시 포함되는 코스였음을 볼 때 이 지역이 한국 산업 시설의 '메카'였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국외여행 중 공항이나 중요도시 백화점 등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 브랜드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 가슴 뿌듯한 자긍심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 모든 국민이 각자의 위치에서 열과 성을 다한 결과임을 잘 인식하고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할 덕목이라 생각한다.

1954년 설립된 '제일모직㈜'는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 추구'의 경영이념 아래 우수한 품질의 다양한 제품을 경제적으로 생산함으로써 당시 범람하던 홍콩, 마카오의 밀수 고급모직물을 추방함은 물론 '골덴텍스'란 고유 브랜드로 모직 선진국으로 역수출함으로써 한국 섬유제품의 우수성을 국외에 널리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삼성이 글로벌 시장에서 첨단제품의 리더로 부상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진 것은 지역의 인재들이었다. 당시 제일모직은 '삼성인재사관학교'라 불릴 만큼 인재가 많았고 이들은 혹독한 경영수업을 거친 후 관계사로 진출, 핵심적 구실을 함으로써 오늘날 미래를 선도할 수 있는 삼성의 창조적 기업 문화가 잉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생활 환경의 변화에 따라 산업 트랜드와 산업 구조는 변하기 마련이다.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 환경을 선점,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시대에 부합하는 '경영이념'과 과업을 구현할 수 있는 '기업전략', 그리고 이를 실현하게 할 우수한 인재 육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교육도시란 명성에 걸맞은 인재 육성 인프라, 성장 잠재력 보유 기업 발굴과 유치, 그리고 진취적인 정서를 전파함으로써 인재가 자생하고 인재가 모여드는 '인재의, 인재에 의한, 인재를 위한' 지역으로 다시 태어남으로써 지난날의 영광을 재현시킬 수 있도록 지역인 모두가 마음과 몸을 모아야 할 때라 생각된다.

정기수 전 제일모직 대구'구미통합공장장(상무), 전 한국섬유개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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