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사진 기록을 남긴다는 '성장 앨범'. 비싼 가격 때문에 '웨딩 앨범'과 비교될 정도다. 예전에 집에서 가족들과 밥 한 끼를 나눠 먹던 돌잔치가 이제는 전문 업체에서 파티를 열어주는 것으로 문화가 바뀌고 있다. 하지만 자녀에게 최고의 것만 해주고 싶다는 부모 마음을 이용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매기거나 소비자 측에 불리한 계약 조건을 요구하는 업체들 때문에 부모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성장 앨범, '패키지의 함정'
성장 앨범은 앨범 크기와 재질, 사진 매수 등에 따라 가격이 40만원부터 300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취재진은 12일 아이 부모를 가장해 대구 북구의 한 유명 베이비 스튜디오를 찾았다.
벽면에는 '특별 할인가' '초대박 할인'이라는 이름과 함께 패키지 앨범들이 즐비하게 전시돼 있었다. "원래 173만원인데 패키지로 하시면 할인이 돼 98만원에 해드려요."
이곳 직원은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상품"이라며 화보 앨범 패키지를 소개했다. 50일부터 300일까지, 여섯 차례 촬영하는 앨범. 추천한 상품 가격은 모두 98만원. 이마저도 현금 가격이라 카드로 결제하면 10%를 더 내야 했다.
문제는 패키지 상품 구매를 교묘하게 유도하는 스튜디오 측의 상술이다. 단 한 번 촬영해 사진 액자로 만드는 상품도 '액자 패키지'로 판매, 가격이 45만원에 달했다. 또 앨범과 액자 10여 개, 성장 동영상과 아기 손발 조형물 등이 포함되면 성장앨범은 98만원에 이른다.
"앨범만 따로 구매하거나 액자나 다른 상품을 빼고 가격을 낮출 수 없느냐"고 묻자 "앨범만 따로 사면 50만원이고, 손발 조형물이나 다른 것을 빼도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다"고 했다.
만삭 사진과 50일 사진을 공짜로 찍어준다며 엄마들을 유혹하는 업체도 있다. 세 살과 한 살 난 딸을 키우는 전업주부 황모(31) 씨. 그는 산후조리원에서 한 업체의 '공짜 만삭사진' 쿠폰을 받고 성장앨범을 계약한 경우다.
황 씨는 큰딸 성장앨범에 95만원, 둘째 딸은 100만원을 내고 계약을 했다. "스튜디오에 일단 가면 '지금 계약하면 돈을 깎아주겠다' '액자를 더 큰 사이즈로 해주겠다'고 적극적으로 영업합니다. 만삭과 50일 사진 촬영이 공짜라고 하는데 계산해 보면 결국 앨범 전체 가격에 이게 포함되는 셈이죠. 백일이나 돌 사진을 찍으면 70만원, 여섯 번 찍으면 100만원인데 가격 차가 많이 안 나니 업체에서 권하는 대로 패키지를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성장 앨범의 가격 거품은 얼마나 될까? 관계자들은 스튜디오 측에서 주로 이익을 남기는 곳이 앨범과 액자라고 말한다. 베이비 스튜디오에서 촬영 기사로 2년간 일했던 최모(28'여) 씨는 "사진 한 장 들어간 액자를 10만원에 판다고 치면 실제 액자 값은 5천~1만원 정도고 인화비가 사진 한 장당 2천원 정도다. 건물 임대료와 관리비, 촬영 기사 인건비를 뺀다고 해도 내가 일한 곳처럼 어느 정도 매출이 나오는 스튜디오는 완전히 남는 장사"라고 설명했다.
최 씨는 또 "스튜디오에서 액자 개수를 늘리거나 무료로 끼워주면서 패키지 가격을 올리는 것도 액자와 앨범 원가가 낮기 때문"이라며 "내가 일했던 스튜디오의 원장은 '너도 꼭 이런 거(베이비 스튜디오) 차려라. 이렇게 많이 남는 장사가 없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고 털어놨다.
◆6개월 전 예약, 돌잔치 업체가 '갑'
최근 돌잔치는 결혼식장이나 전문업체, 패밀리 레스토랑 등에서 파티처럼 여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됐다. 문제는 '부모 마음'을 이용해 상술을 부리는 몇몇 돌잔치 업체들.
어떤 업체는 돌상이 시간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도 한다. 대구의 돌잔치 전문점 A업체는 토요일 같은 시간, 똑같은 방을 대여해도 오후 3시 30분에 예약하면 돌상이 35만원, 오후 7시는 45만원으로 10만원 차이가 난다.
업체 관계자는 "토요일 오후 7시는 어머님들이 가장 선호하는 황금 시간대다. 그래도 현장에 와서 바로 계약서를 쓰면 돌상 가격이 5만원 할인된다"고 설명했다.
돌상 구성 품목은 재사용이 가능한 물건이 대부분이지만 부모가 직접 제작한 돌상은 반입이 안 돼 업체가 제공하는 돌상을 무조건 이용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8월 첫 딸 돌잔치를 한 한모(29'여) 씨는 "돌상에 올리는 케이크와 떡도 우리가 다 준비해야 하는데 돌상이 왜 이렇게 비싼지 모르겠다. 돌잔치 사회는 가족이나 친구가 봐줄 수도 있는 것 아니냐. 모든 게 '패키지'로 판매되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의무적으로 업체 홍보 글을 인터넷에 써야 예약이 가능한 업체도 있다. 업체에서는 이를 '미션 이벤트'라고 부른다. 대구의 B업체는 육아전문 사이트에 답사 후기글 10개와 관련 댓글 50개를 달아야만 예약이 가능하다. 포털 사이트에 '돌잔치 추천' '답사 후기' 등 제목으로 올라온 홍보 글들은 이렇게 생겨나 소비자들의 객관적인 평가를 막고 있는 것.
미션 이벤트에 참가하고 돌잔치 음료수 할인을 받았던 한 부모는 "음료수 한 병에 1천원, 손님 80명이면 8만원인데 알바한다고 생각하고 업체에서 시키는 대로 후기글을 남겼다. 인터넷에서 돌잔치 정보를 검색해도 죄다 좋은 이야기밖에 없는 것도 이런 이벤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이런 곳에서 돌잔치를 하려는 부모들이 늘어나며 최소 6개월 전에 계약하지 않으면 원하는 시간대를 잡는 것조차 어렵다. 하지만 사정이 생겨 한 달 안에 계약을 취소해도 예약금 수십만원을 돌려주지 않는 업체가 대다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서 사용 예정일로부터 2개월 이전에 계약을 해지하면 계약금 전액을 환급하도록 정하고 있다. 하지만 업체들은 자체 약관을 내세워 이를 지키지 않는다.
B업체는 계약금이 30만원으로, 계약서 작성 뒤 일주일 안에 취소할 경우에만 이 돈을 돌려준다. 다음 달 첫 딸 돌잔치를 하는 직장인 김모(30'여) 씨는 지난가을 한 돌잔치 전문점에서 토요일 오후 6시로 예약했다. 김 씨는 "솔직히 6개월 안에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아느냐. 혹시라도 예약을 취소하면 이 돈은 날린다고 생각하고 일단 계약하는 것"이라며 "요즘엔 돌잔치 전문점들이 '다른 업체 취소하고 우리한테 오면 계약금을 대신 내준다'고 공격적인 마케팅도 하더라"고 했다.
추가 비용도 만만찮다. C업체는 아기 부모의 헤어 메이크업 추가 시 10만원, 가족 의상 세트는 13만~20만원, 돌잔치 당일 스냅 사진 촬영(25만~40만원)과 비디오 촬영(15만원) 등을 함께 팔고 있다.
김 씨는 "업체에서 계속 권하면 사진과 비디오 촬영을 안 하고 넘어가기는 어렵다. 손님 한 명당 식사비 2만7천원에 돌상, 답례품 준비비, 사진 촬영비 등을 다 더하면 생일 파티 한 번에 300만원이 넘게 들어가는 셈"이라고 한숨지었다.
기획취재팀=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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