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현철의 '별의 별' 이야기] 이정재

영화 '신세계'의 남자

# "(최)민식이 형 추천 받고, 기회라 생각해 선택"한 '신세계'

배우 이정재(40)는 "연기는 항상 어려운 것 같다"고 했다. 연기 베테랑일 것 같은 그에게 데뷔한 지 오래됐으니 연기가 쉬운 게 아니냐고 하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요즘은 관객의 수준과 만족도가 높아진 것 같다"며 "그래도 그건 좋은 현상 같다"고 웃었다.

"'이 정도 했는데 몰라보네?'라고 할 정도면 일을 건성으로 했다고 할 수 있어요. 요즘 관객들이 대단하다는 걸 다 알고 있으니 신중하게, 완성도 높게 찍으려고 노력을 많이 하죠."

이정재는 이달 21일 개봉한 영화 '신세계'(감독 박훈정)로 관객을 찾았다. 그가 신중히, 완성도 있다고 생각하는 작품이다. 대한민국 최대 범죄조직 골드문에 잠입한 형사 자성(이정재)과 그를 둘러싼 경찰 강 과장(최민식), 범죄조직의 실세 정청(황정민) 등 세 남자 사이의 음모와 의리, 배신을 담은 범죄 드라마다. 조직을 일망타진하려는 경찰과 호락호락하지 않은 조직의 싸움이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다.

그에게 또 다른 대표작이 될 게 틀림없는 영화다. 이정재는 '신세계'에서 호흡을 맞춘 최민식(51), 황정민(43)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특히 중반 이후 이정재의 진가는 제대로 빛을 발한다.

조직을 일망타진하려는 밑그림을 그리는 설계자 강 과장에 의해 위험을 무릅쓴 인물 자성이 그가 맡은 역할이다. 최민식은 제작발표회와 언론시사회, 인터뷰 등을 통해 이정재 캐스팅에 발 벗고 나섰음을 언급했다. 자성 역할에 이정재가 잘 어울릴 것 같았다는 이유다.

최민식의 눈은 정확했다. 이정재는 음모와 배신, 의리라는 길에서 갈팡질팡하는 인물을 맡아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였다. 이정재는 "어려운 역할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또 "가장 자신 없고 싫어하는 캐릭터"라고 솔직히 말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이 역할을 어떻게 하지? 연기하기 까다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행동은 없고, 생각만 많은 역할을 제일 싫어하거든요. '이걸 민식이 형이 같이 하자고 하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막막한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어요."

시나리오를 받고 읽어본 느낌은 밋밋했다. 글로써 표현된 건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자성을 표현하기 모호하다고 해야 할까? 그는 "어떤 분들은 '밋밋한 시나리오가 좋은 시나리오다. 그래야 뭔가 채울 수 있는 게 많으니 좋은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시나리오를 설계 지도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게 허술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감독을 무척이나 괴롭혔다. 이 장면은 왜 나왔고, 어떤 식으로 연기해야 하고, 다음 신과 어떻게 작용하는 신인지 등 귀찮을 정도로 논의했다. 작품 들어가기 전에도 그랬는데, 촬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단다.

"감독님한테 '나도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뭔가를 터뜨리고 싶은 지점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어본 적도 있어요. 그런데 '계속해서 긴장하고 갈등하던 인물이 갑자기 변하면 캐릭터 힘이 깨질 것 같다'며 서로 의견을 조율해 나갔죠. 그 흐름을 깨지 말고,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처음처럼 밀고 나가는 게 좋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이정재는 "'신세계'라는 작품을 결정할 수 있게 된 이유가 (최)민식이 형 때문"이라고 했다. 직접 전화를 걸어와 같이 하자고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최민식, 황정민이라는 배우와 언제 또 만나 영화를 찍겠느냐"며 "같이 일할 기회를 놓치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정우성 씨랑 영화 '태양은 없다'로 친한 사이가 됐는데 '영화 또 같이 찍고 싶다'고 바란 지 십몇 년이 지나도록 함께하지 못했다. 기회라는 게 말처럼 쉽게 오지 않더라"고 말했다.

최민식은 무척이나 적극적이었다. "저녁 먹는 자리에서 민식 형이 저를 옆에 앉히더니 '정재야, 너 자성 역할 잘할 수 있으니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봐. 할 수 있는 만큼 해봐'라고 하시는 거예요. 근데 가만히 보니 이게 용기를 주는 건지, 부담을 주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용기를 내게 도와주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얄밉기도 했어요."(웃음)

이정재는 1993년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 '모래시계', 영화 '태양은 없다' '도둑들' 등 히트작을 냈다. 오랜 시간 연예계에서 활동하며 앞을 향해 달려온 그는 요즘 인생에서 일과 사랑을 빼면 뭐가 있나 싶다. 가끔 술자리에서 지인들에게 하는 얘기다. 연기 활동과 함께 연애, 결혼을 생각하는 것인지 물으니 아쉬워한다.

"사랑 때문에 내가 일을 하고, 흥미롭고 재미있게 살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해요. 가족 간의 사랑이나 이성과의 사랑 모두 포함해서요. 제 인생에서 일과 사랑을 빼면 저는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요즘 일도, 사랑도 제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되는데 그게 아쉽긴 하죠."

벌여놓은 사업은 이미 정리했고 연기에 몰두하고 있는 그가 새로운 사랑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로 들릴 수밖에 없다. 결혼은 둘째 치고 연애는 항상 하고 싶다는 이정재. 연예계 대표 노총각이 돼 버렸는데 부모님은 걱정하지 않을까?

이정재는 "명절 연휴 때 부모님과 식사를 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결혼하라'며 괴롭혔는데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노총각 히스테리를 부렸더니 이제는 결혼에 대한 말은 안 하시더라"고 웃었다.

진현철(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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