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가을 어느날 새벽, 대전행 첫 열차를 탔다. 물론 자전거도 실었다. 열차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설친 잠도 보충했다.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으로 답사한 코스를 확인한 뒤 라이딩을 시작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충청도 피반령고개. 충북 청주에서 보은으로 가는 길 25번 국도에 청원군과 보은군 군계에 있는 고갯길이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온 명나라 이여송 장군이 조선의 산천을 살펴보니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돼 훗날 명나라에 큰 화가 미칠 것이 두려워 귀국하는 길에 피반령고개에 이르러 군사들에게 산허리를 끊도록 명령하자 피가 쏟아져 나왔다고 해서 '피반령'이라 부르게 됐다. 우연히 TV에서 피반령고개를 보고 꼭 한 번은 라이딩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달리고 달려 대청댐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 서로 인사하고 음료수를 나눠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피반령으로 페달을 밟았다. 주위 풍경이 아름다웠다. 드디어 피반령 이정표가 보였다. 해발 360m 정도 밖에 안 되었지만 지겹고 힘들었다. 너무 숨이 차 피가 반으로 줄 만큼 힘들었다.
고갯길 중간 중간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여성들이 많았다. 요즘은 여성들도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러 다니는 것이 보편화된 것 같아 같은 여성으로서 기분이 좋았다. 그분들도 피반령고개가 생각보다 힘들다고 했다.
우리나라 산이야 어딘들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으랴마는 피반령고개 역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푸근했다. 아마 옛날 이 고개를 넘어가는 길에 호랑이가 나올법도 했겠다 싶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작은 슈퍼마켓에서 잠시 쉬었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시더니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을 주셨다. 처음엔 사양하다가 자꾸 권해 마셨는데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지친 몸에 활기가 되살아났다. 사실 한 잔 더 마시고 싶었지만 참았다. 너무 고마웠다. 그러나 '감사하다'란 말 외에 드릴 것이 없었다. 몇 번이나 인사를 한 뒤 가던 길을 재촉했다.
고갯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힘들게 도착한 피반령고개 정상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그곳에는 예쁜 정자 하나가 잘 지어져 있었다. 정상에서 바라본 경치는 탄성을 지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경치에 넋을 잃고 한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정상 우측으로는 보은군으로 가는 내리막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청원군으로 가는 내리막이 보였다. 힘겹게 올라오는 차가 꼭 장난감처럼 작게 보였다. 저 고갯길을 자전거로 올라왔다니. 대견했다.
옛날 사람들은 생활을 위해 피반령을 넘었지만 오늘날은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아니면 올라와서 내려갈 때 속도감을 즐기기 위해 고개를 오른다.
어느덧 저녁노을이 물들어가고 있었다. 이번 라이딩도 충청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따뜻한 인심을 한아름 가져간다고 생각하니 왠지 행복해졌다.
윤혜정(자전거타기운동본부 팀장)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