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돈 없으면 애 못 키우는 시대] <3·끝> 합리적 육아·출산 위한 제안

가정 산후조리·직접 돌사진, 수백만원 절약

"내 아이 돌사진, 내가 찍어요." 가격이 100만원을 훌쩍 넘기는 베이비 스튜디오 대신 '셀프 촬영'을 하는 알뜰한 부모들이 늘고 있다. 지난달 19일 대구 수성구의 한 셀프 촬영 스튜디오에서 추대호(36'왼쪽에서 첫 번째) 씨와 이명선(38'왼쪽에서 세 번째) 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딸 서현 양의 돌사진을 직접 찍고 있다.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산후조리원, 성장앨범, 돌잔치.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하면서도 젊은 부모들이 이 같은 문화를 그대로 따라가는 가장 큰 이유는 '타인의 시선' 때문이다. 자신의 형편은 감안하지 않고 '남들이 다 하니까'하는 식의 분위기에 휩쓸려 출산과 육아를 준비하면 합리적인 소비를 하기 힘들다. 하지만, 나름의 방법대로 현명한 출산'육아 문화를 만들어가는 이들도 주변에 있다.

◆"내 아이 돌사진, 직접 찍어요"

"서현아, 여기 보세요~. 아빠 쳐다보세요~." 지난달 19일 대구 수성구의 지산동 아이숲 스튜디오. 셀프 촬영 스튜디오인 이곳에 추서현 양의 돌사진을 찍기 위해 여섯 식구가 총출동했다.

DSLR 카메라를 손에 든 사람은 서현이 아빠 추대호(36) 씨와 엄마 이명선(38) 씨. 친할머니까지 나서 스마트폰으로 '강남스타일' 동영상을 보여주며 손녀를 웃게 만드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날 추 씨는 돌사진 촬영을 위해 직장에 하루 휴가를 냈다. 2시간 남짓한 촬영에 든 비용은 모두 10만원. 스튜디오 대여료는 2시간에 5만5천원이지만 서현이 언니 두 명도 함께 촬영해 추가 요금이 붙었다.

이날 촬영은 100% '셀프' 였다. 이곳에서 무료로 아기 옷을 빌릴 수도 있다. 이 씨는 빌린 옷 외에도 여러 벌을 직접 챙겨왔다. 세 딸이 드레스를 입고 함께 찍는 촬영 콘셉트도 가족들이 직접 짰다.

이 씨는 "사진관에서 아기 성장앨범 가격이 최소 40만원부터 시작하는 것과 비교하면 무척 저렴한 가격이다. 또 사진관에서는 돌 사진을 찍을 때 가족들이 함께 하기 힘든데 여기서는 자유롭게 우리 스타일대로 촬영할 수 있어서 참 좋다"고 했다.

이 씨 가족이 셀프 촬영을 택한 것은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첫째와 둘째 딸은 베이비 스튜디오에 가서 사진을 찍었지만 아이들이 낯을 많이 가려 활짝 웃는 사진을 얻기가 어려웠다.

이 씨는 "서현이도 언니들처럼 낯을 가리는 편이라 모르는 사람이 촬영하면 아무래도 자연스러운 표정이 안 나왔다"며 "물론 힘들긴 하지만 엄마 아빠가 직접 돌사진을 찍어주는 것도 아이에게 큰 의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들처럼 자녀의 성장앨범 촬영을 직접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높은 가격과 천편일률적인 촬영에 염증을 느낀 부모들이 다시 셀프 촬영 스튜디오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대구에도 10~15곳 정도가 운영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곳 스튜디오 이진우 실장은 "일반 사진관에서는 아이를 웃게 만드는 '베이비 어시스터'들이 같이 촬영해 인건비가 올라가지만 셀프 스튜디오에서는 부모가 이 역할과 사진작가 몫까지 해내야 해 가격이 싸다. 한 달에 40~50팀 정도 셀프 촬영을 하러 이곳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남들 간다고 다 가야 하나요?"

지난해 10월 첫 아들을 낳은 조에스더(30'대구 동구 봉무동) 씨는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았다. 대신 함께 사는 시어머니가 하루종일 조 씨 곁을 지키며 몸조리를 도왔다.

처음엔 그도 고민이 많았다. 2주에 수백만원에 이르는 가격도 부담이었지만 주변의 시선도 무시할 수 없었다. "요즘 젊은 엄마들 중에 산후조리원 안 가는 사람 거의 없잖아요. 주변 친구들은 친정 엄마가 돌봐주면 엄마가 힘들고, 시어머니한테 가면 마음이 불편하다고 편하게 산후조리원에 가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출산 전부터 시어머니가 '몸조리는 꼭 내가 해주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안 가기로 결심했어요."

집에서 하는 산후조리의 장점은 아이와의 유대였다. 대부분 산후조리원에서는 모유 수유 시간을 빼고 아이와 2주간 떨어져 있어야 하지만 집에서는 그 반대였다.

조 씨는 "갓 태어난 내 아들과 24시간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시어머니가 아기 목욕부터 기저귀가는 것까지 옆에서 꼼꼼히 챙겨주시고 가르쳐주셔서 육아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다"며 웃었다.

그는 돌잔치를 준비하면서도 발품을 많이 팔았다. 예식장처럼 최소 '보증 인원'을 잡아야 하는 업체들의 횡포도 싫었고, 재활용 돌상에 수십만원씩 가격을 매기는 폭리를 알면서 눈감기도 싫었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찾아본 뒤 돌잔치 전문점 대신 패밀리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조 씨는 "어떤 곳은 돌상에 50만원 가까이 돈을 내야 하는데 여기는 무료고 보증 인원도 없어 음식을 시켜 먹은 만큼 돈을 내면 되더라"며 "부모들이 식당에 직접 아이 액자를 설치하고 과일이랑 떡도 챙기는 등 다른 곳에 비해 준비할 것이 많긴 하지만 업체의 일방적인 계약 조건에 휘둘리지 않아도 돼 좋다"고 했다.

◆똑똑한 소비자 많아져야

출산과 육아 산업에 유독 가격 거품이 심하게 끼는 이유는 비싸도 그곳으로 향하는 소비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하면 나도 해야 한다'는 부모들의 심리를 이용해 일부 업체들이 높은 가격을 매기고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첫 아이 돌잔치에 400만원 가까이 지출한 직장인 김모(32) 씨는 "가족들끼리 맛있는 밥 한 끼 하며 조촐하게 돌잔치를 하고 싶었는데 아내가 고집을 부려 어쩔 수 없이 거창하게 했다. 아내는 '나중에 애가 섭섭해하면 어쩔거냐'고 말했지만 화려한 돌잔치는 아이를 위한 게 아니라 부모 욕심"이라고 털어놨다.

합리적인 소비자가 많아져야 '갑'으로 군림하는 업체의 행태도 바꿀 수 있다. 최근 돌잔치 '공동구매'로 가격을 낮추는 현명한 엄마들도 있다.

공동구매는 온라인 육아관련 사이트로 알게 된 이들이 돌잔치 메이크업과 돌상, 부부 한복 대여 등을 함께 구매해 가격을 낮추는 식으로 진행된다.

첫딸 돌잔치를 준비 중인 이혜경(32'여) 씨는 "돌잔치 전문점에서 전통 돌상을 하면 50만원이 넘는데 다른 엄마들이랑 병풍 스타일 돌상을 공동구매하면 30만원도 안한다. 포토테이블과 답례품 등도 공구으로 구매하면 돌잔치 전문점에서 하는 것보다 최소 50만원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해 업체의 불공정한 계약 조건 등을 바꾸는 방법도 있다. 가령 사용 예정일 2개월 전에 해약해도 계약금을 한 푼도 돌려주지 않는 돌잔치 업체나 사진관의 경우, 공정위 홈페이지를 통해 불공정 약관에 대한 심사청구를 해 시정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대구소비자연맹 양순남 사무국장은 "대부분 업체가 공정위의 표준 약관을 이용하지 않고 자체 약관을 이용하기 때문에 업체 측에 유리하게 계약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불공정 거래로 행정기관의 시정 명령을 받은 업체는 반드시 따라야 하기 때문에 다른 소비자의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다. 똑똑한 소비자들이 많아져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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