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아버지

1990년대 후반, 경제 위기 직후 두드러졌던 '아버지'의 역할이 다시 재조명되는 분위기다. 당시는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가정에서의 위상이 추락하면서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아버지 기(氣) 살리기'가 대세였다. 1997년 창작동요제에서 입상한 '아빠 힘내세요'가 뒤늦게 국민 동요로 자리 잡은 것도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은 바가 컸다.

요즘은 최고 시청률 47.6%를 기록하며 3일 50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 TV 드라마 '내 딸 서영이'와 1천1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7번 방의 선물'이 대세다. 아버지와 딸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가족 드라마 '내 딸 서영이'에는 여러 에피소드가 섞여 있지만, 슬그머니 시청자의 눈시울을 붉히게 한 것은 자식과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실패한 아버지는 모든 것이 변명'이라는 극 중 대사는 이 땅의 많은 아버지가 가족에게 하고픈 말을 대신한 것이기도 했다.

얼토당토않은 줄거리지만, 1천만 명이 넘는 관객에게 먹먹하고 아련한 아픔을 준 '7번 방의 선물'의 주제도 아버지의 사랑이다. 또 아버지와 자식의 좌충우돌식 여행 모험담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 가'도 가족 가운데서는 늘 한발 물러서 있던 아버지를 전면으로 끌어내 인기몰이 중이다.

2000년대 후반쯤 유행한 다이내믹 듀오의 '아버지'라는 곡이 있다. 20대 후반이 된 자식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지난날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사부곡(思父曲)이다. 어린 시절에는 영웅이요 전설이었던 아버지가 사춘기에는 반항의 대상이었지만, 많은 세월이 흐르고서야 지친 어깨와 주름진 미소에 담긴 아버지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고백이다. '받은 만큼 드릴 수는 없겠지만/ 내 모든 맘 다해/ 사랑합니다'라고 끝맺은 가사가 많은 공감을 받았다.

사실 그동안 아버지의 역할은 한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당연한 책무를 지는 것이었다. 더구나 가부장적인 전통에서 아버지의 아픔은 나타내지 말고 숨겨야 할 어떤 것이기도 했다. 이제 아버지는 모든 짐을 짊어진 꼭대기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어 한다. 아버지로서의 변함없는 역할 수행과 함께, 한 개인으로서 당신이 선택한 삶에 대해 이해를 구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은, 마음만이 아니라 가족의 입을 통해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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