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대통령의 버킷리스트

연말연초에 버킷 리스트(bucket list'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의 목록) 중 하나를 해치웠다. 가족과 함께하는 해외 배낭여행이었다. 하지만 몇 달 전부터 가슴을 뛰게 했던 여정은 생각만큼 즐겁지만은 않았다. 매일 짐을 쌌다 풀었다 하는 강행군이 주된 이유였지만 애시당초 휴가를 대하는 자세가 서로 다르다는 '기본'을 간과한 탓이 더 컸다. 구석구석을 가보자며 새벽부터 이끄는 일정에 뜨악했던 표정들은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해주겠다고 선택한 싸구려 유스호스텔의 좁고 불편한 이층침대 앞에서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요즘 심경도 '혼자 억울한' 필부의 심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자신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을 청와대 입성까지 달성했지만 국정은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사상 첫 국민 과반의 지지를 얻은 대통령이란 영광을 안았지만 최근 지지율은 대선 득표율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급기야는 취임 일주일만인 4일 나라 운영에 대해 사과하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암담함까지 맛봐야 했다. 청와대 구중심처에는 '내 마음을 이렇게 몰라주나'하는 탄식만 가득한 건 아닐까? 청와대 상춘재(常春齋) 마당을 거닐면서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만 되뇌는 건 아닐까?

새 정부의 기형적 출범을 보면서 불안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박 대통령의 성공 여부가 대통령 개인을 떠나 백척간두에 놓인 국가의 운명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공감대 형성은 당연하다. 글로벌 경제위기, 양극화 갈등, 북핵실험 등 엄중한 국제정세를 극복해주길 바라는 마음은 지지 여부와 차원이 다른 것이다.

하지만 난관을 돌파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유일한 치적은 대통령 자녀가 수사를 받는 일은 없을 것'이란 우스갯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부정적 평가의 주된 까닭으로 꼽히는 '잘못된 인선'과 '소통 미흡'을 들어 역대 정부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우려다. 전임 정부의 과오가 오버랩되는 것은 어쩌면 민주주의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박 대통령의 버킷 리스트가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대통령이 되기 전과 뒤의 목표는 달라야 한다는 사실이다. 내심 선친의 후광을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비포(before) 박근혜 vs 애프터(after) 박근혜'로 만들겠다는 야망이 있을 수도 있지만 과욕은 금물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국민들은 이제 더 이상 초인(超人)을 기다리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4일 스스로 밝혔듯 "국민 삶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이야말로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에게는 여러 덕목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에게는 국회의원 시절부터 줄곧 따라다니는 '원칙' '소신' '신뢰'가 큰 자산이다. 여기에다가 자만을 경계하고 남의 입장을 생각하는 '배려'의 마음 씀씀이만 더 보여준다면 금상첨화일 듯싶다. 정치 소비자인 국민의 감성적 욕구까지 읽어내야 한다.

기자가 박 대통령에 대한 믿음을 아직 버리지 못하는 것은-어리석게도-얼마 전 유명 명리학자에게 주워들은 박 대통령 사주풀이의 영향이 있음을 고백한다. 당시 동석했던 지인들이 박 대통령의 당선을 음양으로 도왔던 인사였기에 화제는 자연스레 대통령의 용인술로 옮겨갔고, 결론은 "너무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이야기였다. '대통령의 사주가 워낙 좋아 초반 위기를 넘기면 역사에 남을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사주풀이 한마디에 위안을 삼는 이 불쌍한 백성을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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