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복수노선 체제였던 포항~울릉 항로는 1980년대 치열한 시장경쟁을 거쳐 지금의 독점적 운항이 이뤄지게 됐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독점적 운항은 부실한 서비스 등 주민들로부터 큰 불만을 사고 있다.
울릉도에 여객선이라고 불릴만한 정기 왕복선이 운항된 것은 50년 전인 1963년 '청룡호'(380t)가 처음이다. 해방 직후부터 정부의 항로 보조에 의해 '금파호'(150t)란 월 2회 정기 왕복선이 잠깐 운영됐으나 워낙 크기가 작아 동해안의 작은 풍랑으로 결항되던 때가 더 많았고 6'25전쟁과 함께 이마저도 운항이 중단됐다.
청룡호는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울릉도를 방문한 기념으로 정부에서 동양해운에 자금을 지원(국고보조 50%'정부융자 40%'자기부담 10%)해 마련됐다. 이후 동양해운은 청룡호만으로는 여객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 동해호(200t)를 추가 투입했지만 당시 월 5회 정도 운항하던 두 배는 포항을 출발해 울릉도에 도착하기까지 최소 10시간에서 최고 15시간까지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울릉도에 변변한 접안시설도 없어 1977년 도동항이 완공되기까지 여객들은 도동 인근에서 다시 속칭 '멍텅구리배'라는 보조선을 타고 내려야 했다.
도동항이 완공되자 울릉도 항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한일고속에서 운항시간을 6시간대로 줄이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고속선 '한일1호'(808t)를 취항시킨다. 이를 통해 포항~울릉 항로는 일일 생활권에 접어들게 됐다.
6년 후인 1983년 대아고속해운의 전신인 대아고속훼리에서 대형 고속선 '카페리호'(2천35t)를 취항하기까지 포항~울릉 항로는 3개의 선박이 운항하는 복수 노선이었다. 하지만 800여 명의 승객과 차량은 물론 포클레인 등 건설장비까지 실을 수 있는 카페리호와 경쟁하기에는 다른 선박들의 규모가 너무 작았다. 결국 1987년 경쟁에서 밀린 한일고속은 모든 선박을 대아고속해운에 매각하고 완도~제주 항로로 옮겨갔으며 포항~울릉 항로는 독점 노선의 길을 걷게 됐다. 또 항로를 독점한 대아고속해운은 1988년 수도권 관광객 유치를 위해 울릉~묵호 항로를 개발하고 후포, 강릉 노선 등에 씨스포빌 등 해운업체들이 들어서면서 지금의 각 항로별 독점 체제가 꾸려지게 됐다.
울릉도여객선대책위원회 하경조 위원장은 "울릉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특정회사의 이익이나 경영논리보다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기본권을 보장받는 것이다. 10분이라도 더 빠른 배가 다니고 보다 많은 배가 다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포항'신동우기자 sdw@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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