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연골연화증' 앓는 백병철씨

잘 걷지도 못하는데, '묻지마 흉기'에 찔려…

백병철(가명
백병철(가명'35) 씨가 다친 몸을 겨우 일으켜 장롱에 기대앉았다. 백 씨는 살아오면서 겪은 숱한 좌절과 고통에 힘겨워하며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백병철(가명'35) 씨는 사람 만나는 게 싫다. 사람이 무섭고, 자신을 보고 수군대고 욕하는 것 같아서다. 연골연화증과 묻지마 폭행을 잇달아 당한 뒤부터다. 병원이나 장을 보러 동네 슈퍼마켓, 시장을 가기 위해 가슴 보호대를 두르고 지팡이를 짚고 집을 나서면 사람들이 뒷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가슴앓이'가 이만저만 아니다.

백 씨는 "죽으려고 마음먹었던 적도 있다. 내 삶이 점점 구렁텅이로 빠져들어 가고 있는데 벗어날 기미가 안 보였다. 게다가 사람들 사이에서 내 처지가 심심풀이 땅콩처럼 입에 오르내리는 것 같아 상처가 컸다"고 말했다.

생각해 보니 백 씨의 불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부모의 이혼 후 30여 년 동안 한 번도 떠나가지 않은 것 같다.

◆불행, 불행, 불행

백 씨는 고교 졸업 후 백화점 매장의 하자 보수 일을 시작으로 건축 관련 일을 해 왔다. 하지만 일용직이어서 다른 아르바이트도 해야 했다. 20살 때 아버지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은 뒤 백 씨가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집안이 너무 어려워 군대 또한 '생계 유지 곤란'으로 면제를 받았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사기와 배신도 당했다. 충격과 상처, 좌절이 너무 커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도 생각했지만 할머니와 아버지를 두고 차마 먼저 갈 수 없어 참았다.

2년 전쯤 찾아온 불행은 백 씨마저 쓰러뜨렸다. 2011년 7월 백 씨는 아는 선배로부터 건물 리모델링 현장에서 같이 일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한 달쯤 일했을 무렵 갑자기 양쪽 무릎에 통증이 생겼다. 무릎이 아팠지만 현장을 비울 수 없었던 백 씨는 무릎에 압박붕대를 감고 진통제를 먹으며 버텼지만 3주 뒤 결국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

병원을 찾은 백 씨는 '연골연화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석 달 정도면 완치된다'는 말에 계속 치료를 받았지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일 때문에 생긴 병이라 산업재해 보상을 받으려 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이 '연골연화증은 갑자기 생기는 병이 아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석 달이면 낫는다는 병이 1년 반이 되도록 나아질 기미를 안 보입니다. 지금이라도 종합병원에 가 제대로 검사받고 싶은데 검사비를 낼 돈이 없어 갈 수도 없습니다."

◆묻지마 범죄까지

이뿐만이 아니다. 백 씨는 지난해 8월엔 목숨을 잃을 뻔했다. 같은 동네 주민이 아무 이유없이 흉기를 휘둘렀던 것이다. 백 씨는 이 사건으로 왼쪽 겨드랑이를 찔려 폐까지 상처를 입었고, 왼쪽 허벅지 또한 근육에 손상을 입었다. 다행히 백 씨를 본 이웃이 빨리 119에 신고해 병원에 이송되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가해자는 애초 자기랑 술 먹다가 다툰 사람에게 해코지하려 했다고 하더군요. 그 사람을 찾던 중 애먼 제가 당했던 거죠."

이 사건으로 생긴 마음의 상처도 깊다. 가해자의 아내가 백 씨를 찾아와 "우리도 기초생활수급대상자라 돈을 마련할 수 없다"며 무보상 합의를 요구했고, 거절했다가 별의별 소리를 다 듣게 된 것. 같은 동네에 사는 가해자의 아내나 가해자의 친구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젊은 사람을 형무소에 가둬두고 좋을 게 뭐냐"는 말과 함께 '독한 사람'이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백 씨는 "욕도 듣고, 주변에서 나를 두고 수군대는 것 같기도 하고, 기억하기 싫은 일들도 자꾸 떠올라 눈물로 밤을 지새운 날이 많았다"고 했다.

백 씨는 10년 전쯤에도 길을 가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폭행을 당하고 돈을 빼앗는 속칭 '퍽치기'를 당해 코뼈가 부러지기도 했다.

"할머니도, 아버지도, 저도 나쁜 짓 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왜 저와 우리 가족에게 이런 시련이 자꾸 닥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조용한 곳에 농사지었으면'''

백 씨 가족의 주 수입원은 국가의 생활보조금이 전부다. 그런데 생활보조금이라고 해봐야 할머니와 아버지에게 지급되는 기초노령연금, 지체장애인 생활보조금 등 17만원이 전부다. 아파트 관리비는 물론 건강보험료까지 석 달 이상 밀려 있다. 2년 전 무릎을 다친 뒤 백 씨의 가족 중 생계를 꾸릴 사람이 없어지면서 백 씨는 친구들로부터 돈을 빌리기 시작했고,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사기까지 당하면서 1천여만원의 빚까지 졌다.

백 씨의 친척도 생활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여서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 친척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노환으로 질병을 앓고 있어 백 씨 가족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태다. 결혼한 여동생이 있지만 부부가 버는 수입으로 자기들 입에 풀칠하기도 힘겨운 상태에서 손을 벌릴 수가 없다.

묻지마 범죄로 인해 다친 부분은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통해 치료비의 일부인 50만원을 지원받기도 했지만 가장 많이 다친 왼쪽 폐와 겨드랑이 부분만 겨우 치료할 수 있을 정도였다. 왼쪽 허벅지는 신경이 손상됐을 가능성도 크다. 병원에서는 "근육이 점점 약해지는 것 같다. 종합병원에 가서 제대로 검사와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지만 한 달에 17만원으로 세 식구가 살아가야 하는 백 씨 가족의 형편상 검사를 받는다는 건 불가능해 아예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백 씨에겐 작은 소원이 있다. "병이 나으면 도시를 떠나 내 손으로 작지만 아늑한 집을 지어 농사지으며 살고 싶어요. 농사도 크게 짓는 게 아니라 내가 먹고살 만큼만 짓고 살고 싶고요.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조금이나마 도와주면서 살고 싶어요."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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