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경상도 사람을 두고 '태산교악'(泰山喬嶽)이라 했다. 태백'소백산맥처럼 웅장한 기개와 지조를 갖고 있어 존경을 받을 만한 성품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영남인이 이 같은 성품을 지니게 된 까닭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지리적 환경에다 역사'문화적으로도 그 연원이 깊다. 신라의 화랑도는 신라인의 이념이 됐고 '세속오계'(世俗五戒)는 신조가 됐다. 화랑도 정신은 시대 변천에 따라 희미해졌지만 충과 효, 신의를 바탕으로 한 정신은 오랫동안 영남인의 중심사상이 되고 행동의 기준이 됐다. 여기에 영남이 충과 의를 중시하는 성리학의 본향으로 자리 잡으면서 뚝심과 의리는 영남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뿌리를 내렸다. 경상도의 중심인 대구가 뚝심'의리의 대표 도시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대의(大義)를 추구하는 정신
1984년, 1989년, 1993년 등 세 번에 걸쳐 대구 사람들의 기질을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84년도 조사에서는 대구시민의 기질로 '신의가 있다'는 응답이 62.7%로 '순진하고 투박하다'(64.5%)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정의심이 강하다'는 응답도 55.6%로 높게 나타났다. 89년, 93년 조사에서는 '신의가 있다'는 응답이 49.3%, 49.0%로 낮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또 '정의심이 강하다'는 응답은 89년 47.9%, 93년 43.0%였다. 이와 달리 대구시민 기질이 '보수적이다'는 응답은 84년 57.3%→89년 64.7%→93년 73.0%로 높아졌다.
통계수치를 떠나 신의와 정의심은 대구 사람을 상징하는 기질 중 하나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는 말은 대구 사람에 딱 들어맞는 말인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의리란 개념은 친구 간의 의리만을 뜻하는 좁은 것이 결코 아니다. 의리를 지키는 대상은 국가이기도 하고 정의이기도 했다. 이는 역사(歷史)가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다. 임진왜란'구한말 대구에서 의병활동이 활발한 것은 이 지역 사람들이 의(義)를 추구하는 정신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의 진원지가 된 것도 마찬가지 까닭이다. 해방 이후 대구가 제1의 야당도시로서 전국에 명성이 높았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선거 때마다 야당후보에 투표하여 독재정권에 제동을 건 것은 대의를 위하고 정의를 추구하는 정신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민주운동이 이 지역에서 일어난 것도 대구 사람들의 뚝심과 의리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대범(大汎)한 대구 사람
의를 추구하는 정신이 남다르기에 불의(不義)를 보면 참지 못하는 것도 대구 사람 특유의 기질이 됐다.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에 대해 남이 좋지 않은 얘기를 하더라도 "마 됐다"며 웃고 넘기는 게 이 지역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러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분연히 일어나는 게 대구 사람 특유의 정신이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수많은 우국지사가 나타난 것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기질에서 그 배경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대구 사람들은 얍삽한 짓을 마다하고 싫어하는 기질을 갖고 있다. 한 다리 두 다리 건너면 다 아는 도시이기에 이(利)만 좇는 얍삽한 짓을 하면 금방 낙인이 찍히기 때문일까. 대구 사람들은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 대범한 기질을 갖고 있다.
이런 대구 사람을 두고 문화사랑방 '허허재' 김종욱 대표는 '알밤'에 비유했다. "높고 아름다운 산에 둘러싸인 대구 사람들은 성정이 억세고 투박하지요. 처음 만나면 말 붙이기가 어려울 정도로 무뚝뚝하고 말씨 또한 투박해서 마치 싸움이라고 하려 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한 번 마음 문을 열면 오래도록 변치 않는 게 바로 대구 사람입니다. 씹을수록 단맛이 우러나는 알밤에 비유할 수 있지요." 이렇기에 외지인들은 대구 사람을 두고 "진국이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과묵' '의리' '화끈'으로 대표되는 대구 사람 기질을 두고 비판적 목소리도 없지 않다. 과묵함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음흉함으로, 의리는 지연과 학연에 기초한 폐쇄적 연고주의로, 화끈함은 정서적 비합리성이라고 지적'비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
그러나 동전의 양면처럼 여기에는 장'단점이 같이 들어 있다. 한 면만 눈여겨봤을 때 단점이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과묵함은 자신을 뽐내지 않는 겸손으로, 의리는 국가와 지역에 대한 헌신으로, 화끈함은 좋고 싫음이 분명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능동적 자기표현으로 과묵함을, 공동가치에 대한 충성으로 '좁은 의리'가 갖고 있는 부정적 요소를, 호오(好惡)가 분명한 화끈함을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 갈고 가다듬는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이 모두를 뛰어넘어 달구벌 사람들이 갖고 있는 뚝심과 의리는 두고두고 으뜸으로 삼고 지켜나가야 하는 가장 큰 덕목이란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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