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자진 사퇴 이후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을 중심으로 국회인사청문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자질과 정책 성향을 검증하기보다 신상 털기식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더욱이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후보자 가족의 시시콜콜한 신상까지 들춘다면 향후 공직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인사가 없을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새누리당에서는 미국식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을 염두로 한 국회인사청문회법 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관련 기동팀을 당내에 구성해 구체적인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여권에서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식 인사청문회 제도는 1차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2차 정책 자질 검증은 공개적으로 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새누리당의 제도 손질 기도에 대해 야권에선 반대 목소리가 높다. 비공개 인사청문회는 국민들의 알권리를 침해할 뿐 아니라 국내에선 아직까지 제대로 된 사전 검증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자칫 인사청문회 제도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갑론을박이 한창인 인사청문회 손질을 주제로 여야 국회의원들로부터 찬반의견을 청취했다.
◆"후보자 사적인 영역은 보호해야"…이철우 새누리당 국회의원
-그동안의 국회인사청문회 어떻게 진행돼 왔나?
우리나라에 인사청문회가 처음 도입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지난 2000년 6월 19일이다. 현재 우리나라 인사청문회 대상자는 모두 57명이다.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그동안 우리 국회는 모두 71건의 인사청문회를 열었다. 이 가운데 63건은 가결됐고, 4건은 부결, 4건은 철회됐다. 최근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경우처럼 야당과 여론의 수많은 의혹제기를 무시하고 시중 여론과 동떨어진 결정으로 몰고 가려다 후보자가 낙마한 사례가 8건이나 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회 인사청문회의 공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데?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되면서 공직사회 '정풍'(整風) 분위기 조성과 고위 공직자 후보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자기 반추(反芻)의 기회를 주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인사청문회가 실시된 13년 동안 많은 문제점도 도출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인신공격과 심지어 사생활 영역까지 무차별 파헤치는 바람에 '잘해야 본전'이고, 자칫 '집안 망신'으로 끝나는 현행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우리나라 인사청문회제도의 문제점은?
먼저, 사전 검증과정의 미비다. 오랜 청문회 역사를 지닌 미국은 대통령이 지명하기 전 사전검증에만 무려 4개월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떤 검증 과정을 거쳐서 대통령이 후보자를 지명하는지에 대한 투명성이 결여돼 있다.
그러다 보니 후보자가 내정되는 순간, 병역문제나 세금탈루, 위장전입, 부동산 다운계약서, 논문표절과 같은 문제점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만일 미국처럼 사전 엄격한 검증과정을 거친 후에 후보자를 지명한다면 적어도 이런 흠결은 내정 전에 충분히 걸러 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야당의 '낙마'를 전제로 한 무차별적인 인신공격성 의혹제기다.
우리나라 청문회를 두고 '인격살인'심지어 '도살장'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과거의 작은 흠집 때문에 지금 우리 사회에 기여할 충분한 역량을 용도폐기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달리 해봐야 할 때다.
-그렇다면 인사청문회제도 개선방향은?
대통령이 인선한 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사생활 침해다. 우리 헌법은 17조에서 사생할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청문회 과정에서 후보자의 사생활이 지나치게 침해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후보자의 사적인 영역은 철저히 보호해주고, 전문성과 업무수행 능력 등 공적 영역은 공개하는 이원화 방식 채택 등 지금의 청문회 방식의 손질이 필요하다. 시스템의 문제도 개선돼야 한다. 인사청문 대상자 중 국회인준이 필요없는 부처 장관이나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은 청문특위에서 경과보고서를 본 회의에 보고하면 그만이다.
국회가 부정적인 의견으로 보고서를 채택해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면 끝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앞으로는 해당 상임위가 청문회를 열어 적격 여부는 해당 상임위 의결을 거치도록 하고, 부결될 경우 임명을 하지 못하도록 청문회법을 손질하는 방안도 고려할 때다.
또한, 국회 청문결과 보고서를 반드시 반영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다. 국회입법 조사처가 청문절차를 1차 예비심사와 2차 청문회 심사로 이원화하자고 제안한 것도 사전 검증 철저라는 측면에서 보면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새누리당은 이 같은 청문회 제도 개선을 위해 당내 TF팀을 구성해 놓고 있다. 국민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고, 국민 다수의 정서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합리적 모델 창출로 인사청문회의 품격을 높이도록 하겠다.
◆"비공개 검증…국민 알권리 막아"…홍의락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 자질 및 정책비전 검증은 공개' 방식으로 전환하려는 새누리당의 의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계속 '밀봉'하고 '불통'하겠다는 것이다. 인사청문회의 본질은 능력과 비전은 물론, 국정을 수행할 고위 공직 후보자에 대해 국민이 요구하는 수준의 최소한의 도덕성 검증이다. 새누리당이 인사청문회법 제14조 2항인 '사생활을 부당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비공개 청문회 법제화를 추진하려고 한다. 즉, 의결사항을 '비공개 의무화'하려는 의도다. '본말이 전도'됐다. 법 개정보다 중요한 건 밀도 높은 사전 검증 시스템 강화가 우선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고위 공직 후보자는 자기 검열의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며, 청렴한 공직사회 기강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인사청문회가 '상처'가 아닌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길임을 새누리당은 명심해야 될 것이다.
-'인사청문회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인재풀과 인선 기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인사청문회 낙마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 인사청문회 낙마율은 13.3%로 노무현 정부 3.4%의 4배에 이른다. 5년 전 '낙마 기준'이었던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편법증여, 농지법 위반 등을 적용할 경우 박근혜 내각의 절반이 낙마 대상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름만 바뀐' 같은 정치세력으로 볼 때 박근혜 내각의 인재풀과 인선 기조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싫은 소리' 안 하려는 참모들의 '눈치 보기'와 여당 지도부의 '해바라기형' 구성, 그리고 당 내부 견제세력이 전무하다는 지적이다. 인사청문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의 일방통행식의 인사가 더 큰 문제다.
-새누리당의 인사청문회 제도 개정 움직임을 두고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비판이 많은데?
인사청문회 제도는 1994년 김영삼 정부 당시 민주당이 10대 개혁과제로 도입을 주장했었지만 민자당(새누리당 전신)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이후 2000년 2월 16대 국회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도입된 제도이다. 이후 3차례에 걸친 법 개정을 통해 인사청문 대상이 확대된 바 있다. 특히 2005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국무위원 청문회 대상 포함 지시에 당시 박근혜 의원은 "대통령께서 생각을 잘하신 것 같다"고 발언한 바 있다. 같은 해 4월 "자산백지신탁제도를 도입해서 국회의원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가 지위를 이용해 재산을 불리는 일을 원천적으로 막겠다. 주식은 물론 부동산까지 포함시켜서 엄격한 공직윤리를 확립해 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새누리당은 2011년 야당 추천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해 '좌파 편향 인사'로 규정, 위원회 불참으로 심사경과보고서 채택을 무산시켰고, 2006년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국회 본회의 표결처리 저지를 위해 본회의장 단상을 점거한 바 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과거의 발언과 행태를 되돌아 봐야 한다.
-공직자 등용 과정에서 검증 작업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비공개 인사청문회는 곤란하다는 언론계의 문제 제기에 대해?
여당 인사 가운데 "우리는 아직도 20, 30년 전 통용되던 생활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때 관행처럼 통용되던 행동 패턴을 지금 방식에 대입시키면 과연 누가 인사 청문회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 과거의 작은 흠으로 모든 걸 뒤집는 것은 시대적 상황과 맞지 않는 모순"이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다. 하지만 다운계약서와 위장전입이 과연 사생활 차원의 작은 흠인지. 이에 대한 언론과 의회의 문제 제기가 시대를 벗어난 모순인지 되묻고 싶다.
서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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