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通] 5명의 대통령 25년간 경호 김명곤 교수

박 前대통령, 몰래 청와대 감 따던 경호원 목격 "괜찮아, 비밀로 해줄

한번 경호원은 영원한 경호원. 김명곤 대경대 교수는 국내 경호 분야의 대부로 통한다.
한번 경호원은 영원한 경호원. 김명곤 대경대 교수는 국내 경호 분야의 대부로 통한다.
청와대 경호원 시절, 야외사격 모습.
88서울올림픽 개막식 당시 노태우 대통령을 근접경호하고 있다.
청와대 경호원 시절, 야외사격 모습.
88서울올림픽 개막식 당시 노태우 대통령을 근접경호하고 있다.

1968년 1월 21일 밤. 북한의 124군 부대 정예요원 31명이 청와대를 급습했다. 청와대 뒤편 세검정고개와 평창동 일대에 난입한 이들은 대치 중이던 경찰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총기를 난사했다. 인근을 지나던 시내버스에도 수류탄을 던졌다. 많은 시민들이 죽고 주위는 피바다가 됐다. 김신조를 제외한 전원이 사살되었지만 자칫 대통령이 시해될 뻔한 사건이었다.

당시 군 복무 중이던 21세 청년 김명곤의 가슴에는 불꽃이 일었다. '대통령은 곧 국가다' '대통령은 내가 지킨다'. 그는 제대 후 곧바로 청와대 경호실에 지원했다. 이후 대통령의 그림자가 되어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삶을 살았다. 국내 경호'보안 및 폭발물'대테러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실력을 발휘했다. 한국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래 그만큼 오랫동안 대통령을 경호한 사람은 없다. 살아있는 전설이다. 4일 김명곤(66) 대경대학 교수를 찾았다. 15도의 깍듯한 경례, 문을 열고 나서도 기자가 들어올 때까지 손잡이를 꽉 잡아둔다. 청와대 시절 국가원수 의전법으로 기자를 맞는 김 교수는 영원한 경호원이었다. 갑자기 대통령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5명의 대통령을 지키다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김영삼 전 대통령까지 5명의 대통령을 경호했다. 1973년부터 1997년 퇴임까지 햇수로는 만 24년이다. 그동안 대통령과 국빈 경호행사를 비롯해 1천 회 이상의 경호업무를 담당했다. 주로 폭발물 탐지'보안 쪽의 일을 맡았다.

외국 대통령이 방문할 때는 물론 88서울올림픽 개막식,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현장에 있었다. "경호를 위해서는 안 해본 일이 없어요. 때로는 불국사 불상을 점검하기도 했고 명동성당 내 '영성체'를 모시는 단을 이 잡듯이 뒤진 일도 있었지요."

안타까움도 있다. "1974년 광복절날 문세광이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사건이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당시 부산에 출장 가 있었던 터라 지켜 드리지 못해 아직도 가슴이 아픕니다."

이 사건은 청와대 경호진의 인력 구조를 바꾸는 역할도 했단다. "당시만 해도 경찰이 경호를 많이 했습니다. 이후 전문적인 경호 인력이 대통령 경호에 투입되게 됐지요. 우리나라 경호의 틀이 바뀌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의 경호가 '외교'가 되기도 했다.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등지의 국빈들이 올 때는 우리의 경호에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다른 국가에서는 수준 높은 경호와 의전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국빈들이 회담내용보다는 의전과 경호에 더 감명을 받을 때가 있죠. 사실 88올림픽 이후 우리나라 경호수준은 획기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지금은 미국 대통령 경호실에서도 인정할 정도지요."

그에게 보안은 생명과 같았다. "대통령 경호를 시작한 후 집사람에게조차 '어디에 간다' '언제 돌아온다'는 얘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경호실을 떠났지만 아직까지 보안은 생명과 같습니다."

◆한번 경호원은 영원한 경호원

다섯 명의 대통령은 각자 정치적 노선과 철학이 달랐다. 그러나 그에게는 언제나 철통 같은 경호의 대상일 뿐이었다. 이념이나 지역적 대립에는 언제나 초연했다. "북한 김정은(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한국을 방문하더라도 진정한 경호원이라면 그를 위해 목숨을 던져야 합니다. 이 같은 마음이 경호의 시작이자 끝이지요. 제자들에게 항상 이 점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특별히 인간적인 애틋함을 간직한 대통령이 있단다. 지금도 영원한 경호원을 자처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이 특별히 기억에 남습니다. 두 분의 공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가까이에서 지켜본 두 분은 인간적인 매력이 넘쳤지요." 오랜 세월 모시기도 했지만 존경할 만했기 때문이란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일화 한 토막을 소개했다. "경호원 초년병 시절이었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시절이었지요. 한번은 동료가 청와대 내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따고 있었어요. 그런데 대통령에게 들켜 버렸습니다. 감나무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고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데 박 전 대통령이 그러더군요 '괜찮아, 비밀로 해줄게'." 박 전 대통령의 영원한 경호원이 돼야겠다고 결심한 계기였다.

이순자 여사에 대해서도 남다른 기억을 갖고 있다. "언론에 나오는 비판적인 모습과는 딴판이셨어요. '경호관님, 경호관님' 하며 애살맞게 경호원들을 대하셨고 집안의 소소한 것까지 챙겨 주셨지요. 특히 자녀들에 대해서는 모질 정도로 엄격했어요. 청와대 관계자들이 자녀들에게 용돈이라도 쥐여줄라 치면 자녀들을 불러다 크게 호통을 치곤 꼭 되돌려 주었지요."

권력 무상. 1989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로 유배 아닌 유배를 떠날 때는 충격이었다.

그러나 한번 경호원은 영원한 경호원이다. 몰래 문안 인사를 몇 번 갔다. "당시 현직 공무원 신분으로 그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청와대를 떠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했지요." 새주인의 위세가 시퍼렇던 시절. 백담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저지당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다. 다행히 제지를 당하지 않았지만 보기에 따라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고 하마터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지금도 마음속으로 '영원히' 모시는 대통령은 모두 지역 출신 대통령이다. 그는 전라북도 김제 출신이다.

◆국내 기계경호의 대부

국내 기계경호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중학교 때부터 태권도 유도 검도, 당수도 등 안 해본 무술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청와대 입성(?) 후에는 근접경호보다는 기계경호 부분에 두각을 드러냈다.

일찌감치 1984년 폭발물 테러에 대한 검측 방법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시작으로 테러용 폭발물 검측의 효율적 체계, 국제테러리즘과 대테러 대책에 관한 연구 등 많은 논문 발표했다. 또 안전검측론, 보안검색과 경호장비, 경호의 기본 등 경호학문에서 '바이블'로 통하는 책들의 저자다.

"학계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경호는 근접경호만을 생각하는데 저는 관점이 다릅니다. 근접 경호도 중요하지만 테러 위협이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했을 때 오히려 기계(전자)경호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계경호 분야에 대해 꾸준히 연구했지요."

'경호분야의 대부'로 자리한 데는 경호에 대한 사랑 외에도 타고난 자기관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청와대 생활 내내 자신에게 엄격했고 주위에 손 벌리지 않고 검소하게 살았다. 쉬워 보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부 경호원들은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신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하지요. 그러다 보면 본의 아니게 각종 부정부패에 연루되기도 하고요. 사전에 이를 차단한 아내가 지금 생각하면 고마울 따름입니다."

◆제자를 경호하다?

그는 청와대 경호실에서 근무한 경험을 현장 교육에 연결시킨 몇 안 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경호실에서 퇴직한 후 2002년부터 대경대학 강단에 섰다. 이 대학이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경호 관련 학과를 설치하자 주저 없이 대구행을 결심했다. 경호원을 꿈꾸는 젊은이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달하고 싶어서였다.

태권도 4단, 특공무술 2단 등 무도 7단인 그의 교육은 현장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경호술을 가르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 경호관 시절의 경험을 제자들에게 생생히 전했다. 또 '근접경호'의 현장 경험을 담아낸 교재를 만들었다. 경찰청과 연계해 '경호경비교육 과정'을 대학 최초로 개설, 경호 관련 교육의 체계를 세우는 등 학자로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경호업무는 이론과 실무가 모두 중요한 분야지요. 그러나 당시 이를 결합한 교육과정이 전무하다시피 했어요. 대학에 와서 이런 미비점을 보완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다행히 지난 10여 년간 경호보안교육 체계를 구축하고 다양한 분야의 경호보안 전문가를 배출해 다소 홀가분합니다."

학교에서는 '호랑이 교수'로 통했다. 학내에서 부당한 일이 벌어지면 주저하지 않았다. 학생처'교무처는 물론 필요하다면 총장에게도 직언을 아끼지 않았다. 경호와 학생에 대한 열정을 대학도 인정했다. 지난달 정년퇴직했지만 이날부터 초빙교수로 다시 대학강단에 서게 됐다. "가르친 학생들이 청와대 경호원으로 들어갈 때 가장 뿌듯합니다. 20여 년간 국가원수를 경호한 후 대학에서는 제자들을 경호한 셈이지요."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협조'대경대학

※김명곤은=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김제고를 졸업했다. 1972년 공직생활을 시작해 1973년부터 1997년까지 대통령 경호실 통신처, 안전처, 경호처에서 근무했고 경호부이사관을 역임했다. 인천항 보안공사 상무이사를 거쳐 한국체대'부천대 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대경대학 경호행정학과 교수로 있다. 대통령 경호실 최우수 교관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대통령 표창, 근정포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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