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년월일
이장욱(1968~ )
이전과 이후가 달랐다. 내가 태어난 건 자동차가 발명되기 이전이었는데,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쾅!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뒤에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더군.
수평선은 생후 십이년 뒤 내 눈앞에 나타났다. 태어난 지 만 하루였다가, 십이년 전의 그날이 먼 후일의 그날이다가,
수평선이다가,
저 바다 너머에서 해일이 마을을 덮쳤다. 바로 그 순간 생일이 찾아오고, 죽어가는 노인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연인들은 처음으로 입을 맞추고,
케이크를 자르듯이 수평선을 잘랐다. 자동차의 절반이 절벽 밖으로 빠져나온 채 바퀴가 헛돌았다.
-시집 『생년월일』(창비. 2011)
이 시집이 나오던 해 3월 11일은 동일본대지진이 태어난 날이자 죽은 날이기도 하다. 생년월일과 몰년월일이 같은 팔자다. 바다 속에서 해저를 뚫고 지대하게 출생해서 고래처럼 육지로 밀려와 천천히, 막대하게 몰사해 갔다. 양서류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함께 몰년을 맞은 생명이 부지기수. '3.11'은 또 하나의 기호로 굳어졌다.
그로부터 열흘 뒤 나는 교토를 거쳐 니가타에 갔었다. 이재민들이 여기저기 피난살이를 하고 있었지만 현지 사람들은 일상을 꾸리고 있었다. 나는 촌스럽게도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이장욱의 시에는 유난히 의문사와 부호가 많다. 이 시에서는 딱히 드러내지 않았다. 곰곰 따져보면 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물음표다. 하늘이 생명을 내는 것과 거두어 가는 방식에 대해서는 이렇듯 속수무책이다. 왜 그런가를 대저 어디에다 대고 직접 묻겠는가. 오늘이 그날이다.
(안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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