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엄나무 방석

우리 속담에 '아쉬워 엄나무 방석'이라는 말이 있다. 아쉬운 대로 엄나무 방석에 앉았다는 뜻인데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을 빗대 쓰는 말이다. 가시가 많은 엄나무로 방석을 만들었으니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런 가시방석에라도 앉아야 할 궁한 처지니 이것저것 따질 계제가 아니라는 소리지만 속담에 담긴 깊은 뜻을 짚어본다면 웃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옛날 벼슬아치들은 정해진 품석(品席)이 있었다. 지위 고하에 따라 방석도 차등을 두었는데 품계에 맞게 어떤 방석을 사용할지는 예제로 정해 놓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궁궐이나 관청에서 사용하는 방석은 호조에 속하는 장흥고(長興庫)에서 맡았다. 종이나 돗자리, 유둔(油芚'두꺼운 종이에 기름을 먹여 방석처럼 깔고 앉게 만든 물건) 등을 관장한 기관이다. 조선시대에 사용한 방석은 왕비 방석이나 불상을 모신 부처 방석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현재 남아 있는 실물은 많지 않다. 품석 구분을 헤아릴 길이 없으나 속 재료나 천, 문양의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자수로 화려하게 꾸민 수방석과 솜방석, 모피방석, 왕골방석, 밀대방석, 유둔 등 차이가 아닐까 싶다.

조선시대 70세 이상 연로 대신에게 몸을 기댈 수 있는 안석(案席)과 궤장을 하사했다. 이는 기로(耆老)를 대우하고 대신들을 공경한다는 뜻을 담은 풍습이지만 학문이 높고 덕이 많은 이를 편안하게 모시는 것이 진정한 의미라는 점에서 방석은 덕과 수신의 지표였다. 이처럼 품석은 예우가 목적이지만 품계에 맞게 잘 처신하라는 경계의 의미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즘 공직사회에서는 의자가 방석을 대신한다. 질 좋은 가죽에다 푹신하고 키 높은 의자는 곧 자리로 동일시된다. 이런 풍조는 퇴직한 고위 공직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그런데 서민들은 상상조차 힘든 거액의 보수를 챙기는 전관예우의 돈방석에 앉았다가 되레 바늘방석이 된 사례가 숱하게 목격되고 있다. 더러는 돈 되는 자리만 찾는 그릇된 처신으로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법관 출신임에도 걸맞은 일을 마다하고 퇴직 후 부인의 가게에서 일을 거드는 김능환 전 중앙선관위원장의 딱딱한 편의점 의자는 여러모로 귀감이다. 방석 값도 못하는 현 공직사회의 빗나간 의식과 풍조에 견주면 그 어느 비단방석도 부럽지 않을 만큼 값진 자리다. 엄나무 방석을 자청하는 고위 공직자들이 본받아야 할 일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