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즐거운 도시가 성공한다

'아메리칸 뷰티'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은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 케빈 스페이시가 2003년 영국 올드빅 극장 예술감독을 맡기 위해 런던으로 건너갔다. 많은 미국 사람들은 이 천재적인 배우의 런던행을 참 의아해했다고 한다. 그는 캘리포니아주에서 성장한 뉴저지 토박이다.

할리우드는 그 같은 메이저 영화스타를 붙잡아둘 수 있는 능력도 있었고 그가 런던의 라이브 극장에 매료됐다면 미국에서도 장기 공연이 가능한 브로드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의 승리'를 쓴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스페이시의 이런 결정은 다른 어느 곳과도 다르게 작가 배우들끼리 끊임없이 교류하고 재미를 선사하는 도시를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즐거운 도시가 승리한다는 챕터를 통해 런던과 파리 같은 도시들이 즐거운 도시로 변한 이유는 수세기에 걸쳐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건물, 박물관 공원 요리와 놀이 패션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재가 풍부해서 관심을 끄는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언급하고 있다.

그의 이런 생각은 리처드 플로리다의 보헤미안지수와도 같은 맥락이다. 보헤미안지수란 지역에 작가, 디자이너, 음악가, 배우, 감독, 화가, 사진가 등의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이 사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다양한 예술가들이 사는 도시는 그렇지 않은 도시보다 분명 재미있고 즐거운 도시일 것이다. 보헤미안 지수는 지역의 고용과 인구 증가를 예상하는 지표로도 활용이 되는데, 풍부한 예술적 전통을 지닌 지역이 경제도 활성화한다는 얘기다.

안전이나 교육 같은 기본적인 요건이 충족된 도시가 즐거운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쇼핑 유명 관광지 카지노와 같은 엔터테인먼트 시설들이 일차적으로 있어야 한다. 좀 더 진지한 방문객이라면 문화예술과 음식 패션 라이브공연 등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즐거운 도시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예술가와 전문가들을 보듬을 수 있는 '관객'이 얼마 만큼 존재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변수가 된다.

뮤지컬과 오페라 연극 패션쇼 박물관 미술관, 그리고 전시컨벤션센터는 많은 고정비용이 든다. 배우의 교육과 연기 외에도 대형 무대 세련된 조명과 사운드 장비, 그리고 화려한 인테리어 등. 대도시에는 이런 고정비용을 함께 감당할 수 있는 '관객'들이 많기 때문에 관련 인프라를 유지할 수 있고 예술가들을 보듬을 수 있다. 관객없는 즐거운 도시는 성립하기 어렵다. 흥행이 안 되는데 기획사들이 재미있는 콘텐츠를 갖고 그 도시를 찾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구는 가능성이 높은 도시다.

대구는 최근 공연 도시로서의 명성을 얻고 있다. 공연 기획사들은 대구가 서울 다음으로 공연 관람층이 두터운 도시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대구의 뮤지컬'오페라 축제가 유명해지면서 영상이 주가 된 부산영화제와 달리 라이브 공연이 주가 된 대구의 관객층에 대한 기획사들의 신뢰는 대구가 어떤 면에서 즐거운 도시로서 성공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

대구는 뮤지컬 오페라뿐만 아니라 아트페어도 부산보다 앞서 엑스코에서 열리고 있고 부산은 이를 벤치마킹해 따라왔다. 올해 25회째인 대구컬렉션도 부산 광주 대전보다 앞섰다. 음식박람회도 대구의 수준이 가장 높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 하나 대구 '관객'의 규모를 늘릴 수 있는 중요한 요소는 바로 엑스코와 대구경북에 오는 외지인'관광객을 관객으로 흡수하는 것이다. 이들이 전시회 국제회의 등으로 대구를 방문했다가 상설로 열리는 공연의 관객이 된다면 '관객'의 규모는 더욱 커진다. 브로드웨이도 요즘은 수천 명의 관광객들에 의해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그러나 대구의 이런 좋은 관객 인프라와 관련해 안타까운 점은 잠재적 관객을 많이 보유한 대구가 교통 접근성 때문에 평일 공연의 경우 많은 관객을 뺏기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오후 7시에 시작하는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서는 업무가 끝난 직장인들이 공연 시간을 맞추는 것이 쉽지않다. 엑스코의 전시 이벤트 행사에도 관람객이 평일보다는 주말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의미에서 전시컨벤션센터와 문화 공연 인프라를 지하철 같은 정시성이 확보되는 대중교통으로 연결시켜준다면 전시컨벤션도 살고 문화예술도 살고 나아가 지하철도 살 수 있다. 재미있는 도시 대구. 새로 출범한 정부를 향해 대구가 새롭게 내놓을 아젠다(agenda)로 '즐거운 도시 대구'를 설정한다면 어떨까.

박종만/엑스코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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