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시신 영구 보존

방부 처리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누워 있는 레닌의 시신은 불멸(不滅)을 향한 볼셰비키적 주술(呪術)의 육화(肉化)다. 과학으로 사회와 인간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던 볼셰비키는 과학에 의한 육신의 부활을 꿈꾼 건신주의(建神主義) 교도(敎徒)이기도 했다. 건신주의란 러시아 혁명 당시 막심 고리키 등 마르크스주의 작가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었던 사회주의 종교운동으로, 내세가 아닌 현세에서 죽음을 정복하려는 시도였다.

그래서 레닌 시신의 보존은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육신의 부활을 지향했다. 이는 이후 볼셰비키의 말과 행동에서 잘 드러난다. 레닌 장례위원회의 명칭은 '불멸화위원회'였다. 세 개의 정육면체로 이뤄진 그의 묘는 이러한 불멸 프로젝트의 절정이다. 레닌의 묘는 악명 높은 정치범 감옥 '루비안카'를 재설계했던 알렉세이 슈셰프가 설계했는데 그는 장례위원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블라디미르 일리치(레닌)는 영원하다… 우리가 그를 기릴 방법은 무엇인가? 건축에서 정육면체는 영원을 의미한다… 그를 기리기 위해 묘의 모양을 정육면체에서 끌어오자."

이후에도 레닌의 불멸화 작업은 중단 없이 이어졌다. 1941년 7월 나치가 모스크바 코앞까지 쳐들어왔을 때 레닌의 시신은 살아있는 사람보다 먼저 모스크바를 빠져나갔다. 1973년 소련 정치국은 당 문서를 갱신하면서 레닌의 당원증을 가장 먼저 발급했다. 공산 정권 말기에도 레닌은 18개월마다 KGB 재봉사들이 특수 제작한 새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불멸화위원회' 존 그레이) 그러나 레닌의 바람은 이런 게 아니라 어머니 묘 옆에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호찌민과 마오쩌둥도 레닌처럼 유언이 철저히 무시당했다. 호찌민은 시신을 화장해서 도자기 세 개에 나눠 담아 국토의 북부, 중부, 남부에 하나씩 뿌려 달라고 했고, 마오 역시 화장 후 조국 산하에 뿌려 달라고 했다. 암 투병 중 사망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도 같은 처지다. 차베스는 생전에 "인간을 방부 처리해 전시하는 것은 윤리적 부패이자 시신을 존중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명백한 증거"라며 시신 영구 보존에 반대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정부는 차베스 시신을 영구 보존키로 결정했다. 영면(永眠)이 아니라 불멸을 강요받고 있는 차베스가 저승에서 무어라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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