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중학교는 총 123개, 이 중 101개가 남녀공학교다. 매년 개학을 앞둔 남녀공학교에서는 반편성 문제로 학교장과 교사, 학부모 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남녀 학생을 한 반에 둘 것인가, 다른 반으로 가를 것인가 하는 논의다.
대구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 남녀공학 중학교 101곳 가운데 남녀 학생이 한 반에서 공부하는 혼반을 운영하는 곳이 73개교(72.2%), 분반을 운영하는 곳이 22개교(21.8%), 남녀학생 수의 짝이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혼성+분반 형태로 운영하는 곳이 6개교(6%)였다.
혼반이 좋을까, 분반이 좋을까. 그 일장일단을 교육전문가들로부터 들어봤다. 지난해 노변중에서 정년퇴직한 김득순 대구학부모역량센터장은 39년 교단 경력의 베테랑. 대구시교육청 장학관 출신으로 지난해 경북대사대부설중학교로 부임한 한원경 교장은 '행복교육'을 주창하는 교육전문가다.
◆김득순 대구학부모역량센터 소장
-왜 남녀분반을 해야 할까. 분반의 장점은?
▶대부분의 담임교사들은 남녀 혼반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남녀 학생들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게 되면 남학생들의 씩씩하고 거친 성향이 다소 안정되고 부드러워지기에 학습지도 시간이나 생활지도면에서 조금은 덜 힘들다는 게 교사들의 공통된 의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부모의 경우는 다르다. 교장 시절 학부모들에게 물어봤더니 남녀 혼반보다는 분반을 원한다는 답이 7대 3 정도로 나타난다. 사춘기의 남녀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생활하게 되면 남학생들의 여성화, 여학생들의 남성화가 걱정스럽다는 점, 수행평가에서 여학생들이 남학생보다 내신 석차에서 우월하기에 남학생들이 상대적 불이익을 당한다는 점 등이 이유였다. 학교장으로서 학부모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판단해 학부모들의 손을 들어줬다.
남녀 분반의 장점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에서 남녀 공학교를 추진하게 된 것은 불과 2000년대 즈음이다. 우리 사회는 유교적인 남녀유별 의식이 팽배해 있음에도 글로벌 시대의 요청에 따라 다수의 학교를 남녀공학교로 지정했다. 하지만 사춘기 남녀 학생들이 한 공간, 한 책상에서 종일 생활하게 되자 차츰 학습에 대한 나태 현상이 빚어지고, 학력 저하 현상으로 이어졌다.
남녀 분반을 하면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낮아지고 자연스런 학습 분위기를 조성, 공부에 몰입하는 학습 태도와 습관을 갖게 한다. 남녀 학생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 성향이 다르다. 남학생들은 그 기질이 활발하고, 충동적이고 단순한 반면 여학생들은 사소한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같은 반 친구이기에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남학생들의 장난기가 성희롱, 성추행으로 신고돼 가혹한 징계조치를 당하는 불행한 사태를 줄일 수 있다.
사춘기(12~18세) 학생들은 성별에 따라 그 발달단계가 다르다. 같은 교과목에 대한 이해도에 있어 중학교 여학생이 대체로 남학생보다는 앞선다. 내신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남녀 분반으로 편성한다면 성적 격차의 불만을 최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남녀 분반에 따르는 약점과 보완책은?
▶남녀 분반의 약점은 이성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자연스런 인간관계를 형성한다는 혼반의 장점을 일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반으로 인해 이성 친구에 대한 동경심과 호기심이 더욱 높아지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만 이는 소수학생에 그친다. 집단을 이룬 같은 성끼리 공격적, 폭력적인 성향이 발동하기도 해 생활지도상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경험상 혼반 편성 때보다는 그 문제점이 미약하게 나타났다. 이런 생활지도상의 어려움은 다양한 문화'예술'체육 등의 체험학습을 추진, 불안한 사춘기의 정서적 갈등과 폭력성을 줄여나감으로써 풀 수 있다.
-앞으로 어떤 쪽으로 가야 할까?
▶학교 교육 본연의 기능은 삶의 바탕인 생각의 기초를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다. 사춘기 남녀 학생들이 갖는 이성에 대한 신비감과 호기심을 아름답게 채워주기 위해 제일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이성 친구에 대해 서로 돕고, 배려하며, 존중하는 교양인이 돼야 한다. 이런 교육을 어릴 때부터 학부모와 교사가 앞장서서 지도해야 한다.
◆한원경 경북대사대부설중학교 교장
-왜 남녀혼반을 해야 할까. 남녀혼반이 갖는 장점은?
▶최근 지역의 중학교에서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위해 남녀분반을 혼반으로, 반대로 남녀혼반을 분반으로 바꾸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타당성을 따지기 이전에 해당 학교의 교직원들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느낀다. 학생지도를 위한 노력과 고민의 흔적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질풍노도 시기에 있는 중학교 남학생의 학급 담임은 무척 힘이 든다. 상대적으로 여학생 학급 담임은 조금 낫다. 그러다 보니 일부 교사들이 남학생 학급의 담임을 기피하는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 남녀혼반을 하면 별난(?) 남학생들이 전체 학급으로 분산된다. 분산되면 남학생 학급 담임에게 집중되었던 어려움도 분산되는 효과가 있다.
우리 학교는 '배움의 공동체 수업'을 하기 위해 신학기부터 남녀혼반을 했다. 한 아이도 배움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고, 모든 아이에게 질 높은 배움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학교 입장에서는 큰 변화이다. 그래서 학생, 학부모, 교원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찬반 설문조사를 했다. 학생 64%, 학부모 54%, 교원 88%가 혼반에 찬성했다.
배움의 공동체 수업은 교실의 책상을 'ㄷ'자로 배치하고 수시로 모둠 활동을 한다. 공유와 협동을 위해서다.
그래서 배움의 공동체 수업에서도 모둠 활동을 통한 대화를 많이 한다. 그런데 남학생 4명의 모둠에서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에 비해 여학생 2명, 남학생 2명으로 구성된 모둠에서 대화가 가장 잘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여학생은 대화의 명수이기 때문이다. 남자 아이들은 활동을 통해 사귀고, 여학생은 대화를 통해 서로 사귄다고 한다. 대화의 질이 배움의 질이다.
실제 학교에서 1주일 정도 혼반을 해 수업을 한 결과 떠들거나 조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학생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우리는 생활지도 문제가 해결되면 수업이 저절로 잘 이뤄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반대이다. 배움이 무너지지 않아야 생활지도 문제가 해결된다. 배움은 아이들에게 희망이다. 친구 관계가 무너져도, 가정이 무너져도 배우는 한 아이들은 무너지지 않는다. 일본의 3천여 개 학교에서 배움의 공동체를 도입한 결과 학교 폭력과 왕따, 등교하지 않는 학생들이 줄어들고 성적이 향상되는 등의 긍정적 성과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수업을 포기했던 아이들이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자존감을 회복하고 꿈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남녀혼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남녀혼반에 따르는 우려(생활지도, 학습태도 등)도 많다. 보완책은?
▶모든 정책에는 명암이 있기 마련이다. 남녀혼반에 따른 대표적인 우려는 아이들의 문란한 이성교제이다. 이성교제는 분반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교 안에서 말리면 학교 밖에서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이성교제와 건전한 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더불어 현재의 교사의 가르침 중심의 학교 수업을 학생 배움 중심의 수업으로 바꾸어 가야 한다. 교사의 상시 수업 공개와 더불어 질 높은 수업연구회를 위한 학교 구성원들의 노력과 교육청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앞으로 어떤 쪽으로 갈까.
▶혁신학교든 행복학교든 학교의 문제는 교육과정과 수업으로 풀어가야 한다. 생활지도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수업이 바뀌어야 학교가 바뀐다. 수업은 학교가 학생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복지이다. 학생은 배움의 즐거움을 통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 교사의 행복도 수업의 전문가가 될 때 생겨난다. 생활지도를 위해서, 교사가 외롭게 수업하는 교실 상황을 극복하고, 학생들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되돌려 주기 위해서도 앞으로 더 많은 학교가 남녀혼반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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