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가 사랑한 그림/김범수 외 10명 지음/알렙 펴냄
하이데거는 고흐의 '구두 한 켤레'를 보고 사물이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푸코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통해 인간의 위치에 대해 지각했고, 들뢰즈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자화상'으로 자신의 존재론을 구축했다.
미술과 고전의 만남은 꽤 오래되었다. 플라톤은 미술을 철학보다 낮은 위치에 배치했고, 헤겔은 다시 정신의 세계로 미술을 초대했지만, 여전히 철학과 종교보다는 낮은 단계에 자리매김했다. 니체와 하이데거는 미술을 다시 진리로 나가는 매체로 삼았다.
이 책은 한국철학사상연구소 소속 철학자 열한 명이 모여 '철학과 미술의 오래된 만남'을 보여준다. 베레그송의 변화의 지각에 관한 이론은 터너와 코로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고, 메를로퐁티의 존재론은 세잔의 색채에 관한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발터 벤야민은 대중 예술을 통해, 아도르노는 아방가르드 예술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예술의 의미와 관계를 묻게 되었다.
전호근 교수는 '세한도'에서 조선시대 '불멸의 정신'을 읽어낸다. "우리의 삶 속으로 추위가 온다는 것은 시련인데, 시련이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해준다. 날씨가 추워졌을 때 삶의 가치가 비로소 드러난다".
저자들은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다'는 관점으로 접근한다. 그림은 그저 눈으로만 봐서는 작품이 품은 뜻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 화가는 감각적인 충격을 던져주고, 철학자는 그 이미지의 본질을 지각한다. 이 책은 화가의 외침을 철학이 어떻게 감각하고 있는지, 철학은 예술의 기억을 어떻게 재배치하고 있는지에 대해 탐색한다. 또 철학과 예술의 오래된 관계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시도한다. 356쪽, 1만7천원.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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