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사탕'은 시간을 거슬러가는 영화다. 1999년 봄, 사채업자와 증권회사에 가진 돈을 다 털리고, 동업자에게 배신당하고, 아내와 아이에게도 버림받은 나이 마흔의 사내 영호의 20년을 되짚어간다. 절망밖에 남은 게 없어 달려오는 기차를 마주한 '현재'부터, 어렵사리 총을 한 정 구해 죽으려다 첫사랑의 남편에게 이끌려 그녀를 만나러 가는 이틀 전, 바람피우는 아내를 잡고 돌아서서 불륜의 정사를 하는 30대 가구점 사장이던 5년 전, 다시 7년 전의 자꾸만 더 먼 과거로 돌아간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암시하는 듯한 기차 인서트가 문을 여는 7개의 장을 지나 스무 살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천천히 사진첩을 넘겨보듯 떠오른다.
1999년 봄. 주인공 김영호(설경구)가 '가리봉 봉우회'의 야유회 장소에 느닷없이 나타난다. 20년 전 첫사랑의 여인 순임(문소리)과 함께 소풍을 왔던 곳. 그러나 세월은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후다. 기찻길 철로 위, "나 다시 돌아갈래!" 영호의 절규는 기적소리를 뚫고, 영화는 1999년 오늘에서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사흘 전 봄. 영호는 마흔 살, 직업은 없다. 젊은 시절 꿈, 야망, 사람, 모든 것을 잃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중년. 우연히 죽음을 앞둔 첫사랑 순임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순임은 이미 혼수상태에 빠져 그를 알아볼 수 없었다.
1987년 봄. 영호는 닳고 닳은 형사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 잠복 근무차 출장 갔던 군산의 허름한 옥탑방, 카페 여종업원의 품에 안긴 그는 첫사랑 순임을 목놓아 부르며 울음을 터뜨린다.
퇴락한 중년에서 미처 때묻지 않았던 젊은 날의 순수로 역류하는 과정은 박하사탕 맛처럼 달기보다 알싸하고, 물살에 역행하는 연어의 회귀처럼 처연한 몸부림의 아픔이 밴 삶의 이야기다. 영호의 세월만큼 겹쳐지는 한국사회의 질박한 시대상까지, 이창동 감독의 리얼리즘은 '삶은 아름답다'는 역설적인 여운을 남길 만큼 힘이 세다. 러닝타임 129분.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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