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선 직전의 일이다. 김부겸 전 국회의원 등 민주통합당 대구시당 관계자들이 음식점에서 식사하고 있는데 한 40대 시민이 불쑥 인사를 건넸다. 회사원인 듯 넥타이 차림의 그는 김 전 의원에게 "고생한다. 식사비를 대신 냈다"고 말하고 나서 휑하니 나가버렸다. '새누리당의 철옹성'에서 지지율 확산에 애쓰고 있던 민주당 인사들로선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투표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문재인 후보는 대구에서 19.53%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쳐 '30% 득표'라는 자체 목표에 훨씬 못 미쳤다. '대구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란 탄식이 쏟아졌다. 민주당 대선후보의 대구 득표율이 상향곡선을 그렸다는 데 겨우 위안을 삼아야 했다.
민주당이 5'4전당대회를 앞두고 최근 지역위원장 공모를 마감한 결과도 이 같은 '좌절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대구에서는 김준곤 달서갑'김진향 달성'이헌태 북을 지역위원장, 경북에서는 이성로 안동'정일순 영양영덕봉화울진지역위원장 등 모두 5명의 현역 위원장이 물러났다. 원외(院外)라 하더라도 지역위원장은 내년 지방선거 공천 등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핵심 자리다.
'독립군'은 야당 소속의 지역 정치인들이 스스로를 가리키는 자조 섞인 표현이다. '진보세력 불모지'에서 정신적, 경제적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오로지 자긍심만으로 버티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제1 야당인 민주당만 하더라도 지역위원장은 물론 시'도당위원장에 대한 중앙당의 지원은 전무하다. 활동비는커녕 속된 말로 기름 값도 없다. 민주당 한 지역위원장은 "아무리 아껴쓴다 하더라도 품위유지 명목으로 월 100만원 이상은 지출하기 마련"이라며 "다른 직업이 없는 경우 생계를 가족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도당 사무실의 살림살이 역시 늘 빠듯하다. 당원들로부터 당비를 거둬 운영해야 하지만 워낙 지지기반이 엷은 까닭이다. 평소에는 친하게 지내며 도와주지만, 당원이 돼 달라는 부탁에는 고개를 젓는 유권자들이 대부분이어서 인구 250만 명의 대구에 당비를 내는 당원은 1천 명 남짓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당에서는 대구경북 등 열세지역에 지원금을 보조한다. 하지만, 전체 예산 가운데 80% 이상이 직원들의 월급이다. 정책 개발, 당원 교육, 여론조사 등에 투자할 여유는 전혀 없는 형편이다. 대부분 계약직인 지역 사무처 직원들은 중앙당과 달리 4대 보험 지원도 받지 못한다. 당내에서 '한 지붕 아래 재벌과 노숙자가 같이 사는 꼴'이란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전당대회 때마다 당 지도부는 지역에 내려와 "척박한 땅에서 당을 지키는 당원들이 존경스럽다"고 치켜세우지만, 항상 말뿐이다. 민주당 영남권 시'도당위원장이 지난 1월 공동으로 7대 요구안을 발표하면서 ▷중앙당과 영남 시'도당 당직자 간의 인적 교류 확대 ▷시'도당 권한 강화를 통한 지방자치적 운영권 보장 대책 수립 등을 포함했지만 아직 개선되지 않고 있다.
야권 인사들은 대구경북에서 민주당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이유로 '호남당' '좌파' 이미지가 너무 강한 탓으로 보고 있다. 당선 가능성이 크지 않다 보니 인재가 몰리지 않고, 결국 기반 확대가 이뤄지지 않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 내부에서는 중대선거구제'석패율제 도입 등 취약지역을 배려한 선거제도 개선과 함께 하방운동(下放運動)이라도 벌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에서 당 간부들을 농촌이나 공장으로 보내 노동에 종사하게 했던 것처럼 지역 출신 명망가들을 총선 대신 내년 기초'광역의원'단체장 선거에 투입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김태일 교수는 "민주당이 정권 교체를 하려면 영남 등 취약지역 시도민들이 민주당의 존재감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며 "선거 때만 나타나 표를 바라는 '떴다방'이 아니라 평소에도 지역발전에 애쓰는 '알리바이'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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