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점심 먹으려면 "택배요"…한숨 돌리면 "잡초 뽑아"

휴식 없는 아파트 경비원들…업무외 근로 다반사, 법정휴가 등 서류에만

이달 15일 오후 1시쯤 대구 북구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김모(69'대구 북구 팔달동) 씨는 아파트로 배달되는 택배 물품들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아파트에 배달되는 택배 물품은 하루 평균 10개 정도이며 많을 때는 20개가 넘는다. 정신없이 배달돼 오는 택배 물품들을 챙기다 보면 휴식시간은 이미 지나간 지 오래다. 김 씨는 "원래 정오~오후 2시는 점심 및 휴식 시간으로 보장된 시간"이라며 "하필이면 이때 택배가 몰려 와서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아파트 경비원들이 김 씨처럼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파트 경비원들은 계약상 보장된 휴식시간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으며 아파트 경비'순찰 업무 이외의 잡무에도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씨는 이 아파트에 근무를 시작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경비원이다. 이 아파트의 경비원들은 1년 단위로 관리사무소와 계약을 갱신한다. 24시간을 일한 뒤 다음 날은 휴무하는 24시간 맞교대 근무다. 김 씨와 관리사무소가 고용계약을 할 당시 보장된 휴식시간은 7시간으로 정오~오후 2시, 오후 7~8시, 오전 1~5시다. 하지만 보장된 휴식시간이 지켜지는 경우는 드물다. 택배 물품뿐만 아니라 시도 때도 없는 주민들의 민원을 상대하다 보면 휴식시간을 넘겨 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아파트 주민들은 경비원들에게 휴식시간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경비원이 휴식시간에 식사하거나 잠시 자리를 비운 것만으로도 따지는 경우가 많다. 김 씨는 "어떤 주민들은 새벽 시간에 경비실에 전화해 '왜 자리를 비우고 있느냐'며 따지거나 욕설을 하기도 해 편히 쉴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아파트 경비원들은 경비 업무와 상관없는 잡무에도 시달린다. 아파트 주변을 청소하고 화단의 잡초 제거는 물론 심지어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있는 기름때 제거 작업도 경비원의 몫이다. 한 아파트 경비원은 "분명히 청소 용역업체가 들어와 있고, 잡초 뽑기나 지하 주차장 기름때 제거 등은 용역업체에서 해야 할 일이지만 관리사무소는 경비원들에게 시킨다"고 말했다.

이처럼 아파트 경비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근무 환경을 개선해 달라고 관리사무소 측에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 아파트 경비원들은 계약직으로 고용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관리사무소 측에 근무 환경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다가는 미운털이 박혀 계약 갱신이 안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꾹 참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에는 노무사 등을 통해 근무 환경 개선에 대한 부분을 상담하고 노동청에 신고를 진행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한 노무사는 "최근 휴식시간이나 연차 휴가, 퇴직금 문제로 상담을 받는 아파트 경비원들이 늘고 있다"며 "용역 업체를 통해 계약한 경비원들은 업체로부터 고용 조건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경우가 많지만 자치관리를 시행하는 아파트는 경비원을 직접 고용하면서 고용 조건에 대한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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