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0세 시대 은퇴의 재발견] <1부>새로운 출발 ⑬귀농·귀촌이야기<상>

"귀농이 전원 생활? 치열한 삶의 현장인 걸"

'한적한 시골에서 텃밭을 일구며 편안하게 늙고 싶다.'

2011년 농민신문 조사에 의하면 은퇴자의 75% 정도가 농촌에 살고 싶다고 했다. 전원에서 위로받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겠다는 꿈이다. 문제는 귀촌이 도시생활을 잠시 접고 휴양 삼아 떠나는 관광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민을 떠나듯 새로운 터전에서 나머지 인생 전부를 걸어야 하는 것이 귀촌이다. 더구나 잘못될 경우 되돌아가기도 쉽지 않다. 박용범 ㈜전국귀농운동본부사무처장은 "농촌으로 가서 살기 이전에 내가 귀촌해야 하는 10가지 이유를 분명히 쓸 수 있어야 하고, 왜 귀촌을 하려는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꿈은 이루어진다

삼성전자에서 13년간 연구원으로 일했던 박성배(48) 씨. 그는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 2009년 10월 도시를 미련 없이 떠났다.

박 씨는 회사를 떠나기 4, 5년 전부터 귀농준비를 조금씩 해왔다. 한국농촌관광대학에서 또 경기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귀농수업을 받았다. 본격적인 귀농을 앞둔 2009년 봄 3개월간 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에서 과수 창업농 공부도 했다.

귀농교육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박 씨는 경북 상주시의 한 사과농가에서 3개월의 인턴과정을 거쳤다. "과수 창업농교육을 통해 사과재배가 가장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과를 재배하기로 마음먹었죠,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차별화가 쉽다는 거니까요." 박 씨는 일부러 힘든 길을 택했다. 어려운 품목일수록 열심히 공부해서 잘 재배하면 높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인턴이 끝난 2009년 10월, 사과밭이 많은 경북 상주시 공성면 도곡리에 5천600㎡의 사과밭을 임대했다. 2011년 2월에는 귀농창업자금(이율 3%, 5년 거치 10년 상환)을 받아 5천㎡의 사과밭을 추가로 구입했다.

박 씨는 다년생 과수의 경우 기존에 농사짓고 있던 땅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나무를 심는 데 비용이 들뿐 아니라 수확하는데 4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또 처음부터 농사지을 땅을 구입하기보다는 일단 임대를 해서 농사를 짓다가 주변 농지의 정보를 어느 정도 얻었을 때 구매할 것을 추천했다.

귀농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박 씨는 지독한 공부벌레다. 농사와 관련된 책, 잡지, 인터넷을 통해 하루 평균 4시간 이상을 이론 공부에 투자하고 있다.

요즈음엔 인터넷, 스마트폰 등 통신기반이 잘 갖춰져 있어서, 귀농을 했다고 해서 도시생활과 담을 쌓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는 박 씨. 시골에 있다는 것은 물리적인 거리감일 뿐이지 생활에 불편함은 없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농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서둘러 지역 작목반에 가입했다. 작목반원들과 자주 만나고 조언을 구하면서 아는 사람도 많아지고 도움도 많이 받고 있다. 동네 일에 열심인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한다.

◆이런 말에 속지 마라

만일 당신이 '도시에서 월 300만~400만원은 벌었으니까, 시골에 가서는 최소 월 2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귀농을 다시 고려해야한다. 홍성으로 귀농한 9년차 이모(57) 씨는 부부 노동력으로 농사를 지어 한 해 2천40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이 부부는 주변에서 '독종'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부지런하다. 이렇게 해야만 월 200만원을 벌 수 있는 것이 농촌 현실이다. '당신도 부농의 될 수 있다'는 광고는 그저 광고일 뿐이다.

월 50만원 정도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면 이미 성공한 귀농자다. 소득을 많이 올리려면 광부처럼 밤에도 헤드 랜턴을 켜고 농사를 지어야 한다.

작물 선택 역시 누가 돈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만 믿고 뛰어들었다간 판판이 실패다. 자신에게 맞는 작물을 선택하고 집중하게 되는 적절한 시기는 귀농 이후 3, 4년차이다. 실제로 그때가 돼야 안목도 생기고 교육과 정보에 대한 욕구도 정확해진다.

◆이것만은 천천히

이미 정착한 귀농인들은 무턱대고 시골 땅부터 사지 말라고 충고한다. 영양군에 둥지를 튼 홍대진(48) 씨는 "땅을 보는 안목도 없고 내지인에게 파는 가격과 외지인에게 내놓는 가격 차가 많이 나기 때문에 땅은 천천히 사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농촌에서 열심히 일하며 살다 보면 괜찮은 조건의 땅이 주변에서 나오기 마련이라고 한다.

집 역시 당장 짓지 말고 허름한 시골집을 빌리거나 아니면 간단한 수리를 한 후 살아보라고 권한다. 내게 맞는 집이 어떤 것이며 무엇이 꼭 필요한가를 알 수 있을 때 집을 짓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집 또한 크게 짓지 않아야 한다. 그림 같은 집을 생각하고 크게 지었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집 무게에 짓눌려 농촌생활의 장점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손으로 집을 직접 짓고 싶다면 작은 개집이라도 먼저 지어보고 이것이 성공하면 창고를 짓는 것이 순서란다.

◆마음을 얻어라

대학교수였던 최민수(69) 씨는 2005년 퇴직 후 고향 청도에 내려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아내는 결사반대였다. 1년여 동안 아내를 설득했지만 실패해 '나홀로 귀촌족'으로 살았다.

최 씨처럼 대부분의 아내들은 귀향을 반기지 않는다. 접해보지 못한 시골생활에 대한 부담감과 특히 남편 고향으로 갈 경우 시집살이의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귄 터전과 친구들을 내버려둔 채 남편과 단둘이 고향으로 간다는 것은 시집가는 것만큼 부담스럽고 힘드는 일이다.

다행히 최 씨는 아내와 곧 합쳤다. 청도에서 자연을 벗하며 보고 느꼈던 감정을 글로 적어 아내의 감성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의외로 농촌의 낯선 문화를 견디지 못해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이웃 할머니가 불쑥 안마당으로 들어와 장독을 열고 장맛을 본다든가, 어느새 텃밭에 제초제를 뿌려놓고 가기도 한다. 이쪽에서는 참을 수 없는 간섭이라고 하지만 저쪽에서는 쓸데없는 과민반응이라고 여긴다. 농촌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현지민보다 더 현지민 같은 차림과 생활습관을 가져야 한다. 농촌을 얕보거나 삶의 질이 낮은 곳이라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귀농인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도움말:상주시 귀농귀촌 특별 지원팀'(사)전국귀농운동본부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그림: 화가 이도현

●귀농 성공 가이드

1. 충분한 기간을 두고 차근히 준비하라.

농지와 농기계를 구입하고, 농장 시설을 갖추고, 기초 농업기술뿐 아니라 경영 역량도 익히고 판로도 개척하여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단기간에 해결하려고 한다면 실패한다.

2. 여유자금을 마련하고 씀씀이를 줄여라.

농업은 다양한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처음 몇 년간의 실패를 감내할 수 있는 여유자금을 확보하여야 한다.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건강하게 사는 것이 귀촌에 성공하는 방법이다.

3. 작게 시작하라.

처음부터 거대한 시설을 갖추고 농기계를 갖추는 것은 위험하다. 작게 시작한다면 위험도 작게, 실패하더라도 쉽게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4. 마을 일을 도맡아 하라.

마을 주민들로부터 성실한 사람, 마을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마을 행사나 모임에 반드시 참여하고 마을 일에는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5. 도와줄 사람을 확보하라.

귀농인들이 가장 목말라하는 것이 정보이다. 행정기관, 귀농 선배들과 유대관계를 통해 각종 영농정보를 얻고 영농활동과 관련한 전문분야의 사람들과 인관관계를 형성한다.

6. 시장을 먼저 생각하라.

어디에 어떻게 팔 수 있는가를 충분히 고려한 후 작목을 선택하고, 선택한 품목이라도 시장상황이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작목을 전환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7. 발품을 팔아라.

귀농 초기에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그 이상의 기술은 누구도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끊임없이 연구'시험하는 사람만이 최고의 농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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