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5일 밤 대구 동성로. '불금'(불타는 금요일)인데다 완연한 봄 날씨. 한껏 꾸민 차림으로 '깔깔'대며 걷는 젊은이들이 길거리를 가득 메웠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인구밀도'가 특히 높은 '핫 플레이스'가 있다. 희한하게도 시곗바늘이 시내버스와 지하철이 끊기는 밤 11시를 향하며 오히려 인구 밀도가 점점 높아지는 곳이다. 뜨거운 대구에서도 가장 뜨거운 밤을 만끽할 수 있는 곳. 바로 클럽 골목이다.
◆요즘 젊음 집합소, 클럽
서울 홍대에 클럽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부터다. 이전까지 대세는 록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록 카페였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초반부터 힙합 음악을 틀어주는 힙합클럽이 유행했고, 힙합 외에도 록, 테크노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전문적으로 틀어주는 클럽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꾸준한 흥행에 2000년대 중반부터는 대형 클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반 나이트클럽 규모까지는 아니지만 그만큼 클럽의 대중화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서울 홍대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동성로에도 하나 둘 클럽이 들어서며 클럽 골목은 대구 클럽 문화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현재 클럽 5, 6곳이 성업 중이다. 시간대별로 나눠 음악을 트는 디제이만 30여 명 이상 활동하고 있다.
처음에 소수 마니아만 드나들던 클럽은 이제 대학생들이 막걸릿집 대신 '개강 파티'를 여는 곳이 됐을 정도다.(취재 다음 날인 16일 대구대 총학생회는 동성로 한 클럽에서 개강 파티를 했다.) 대학생 박보민(24'여) 씨는 "클럽 음악은 이제 난해한 전자 음악이 아닌 누구나 친숙하게 몸을 맡길 수 있는 팝이 됐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인기를 얻었듯 말이다"며 "클럽에 대해 막연히 갖고 있던 '퇴폐적이다'거나 '불온하다'는 인식이 사라지고 있다. 실제로 가보면 신나는 음악과 춤과 맥주 한 병 정도의 가벼운 술이 전부다. 카페에 가듯 친구들과 함께 클럽에 놀러 간다. 클럽에 카페 형식을 가미한 '라운지 클럽'도 요즘 인기다"고 했다.
◆지역 청년 문화 담는 클럽 파티
그러면서 클럽은 마냥 놀기만 하는 것을 넘어 '청년 문화'를 담는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한마디로 "놀고 보니 허무하지 않게, '발전적'으로 놀겠다"는 얘기다. 이날 한 클럽에서는 대구경북 대학생 문화잡지 '모디'와 지역 대학생들이 만든 패션 브랜드 '네키'(NEKI)가 홍보부스를 차리고, 지역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이벤트를 펼친 파티가 열렸다. 이 파티를 주최한 단체 역시 지역 청년기업이다. 공연'전시'페스티벌 등 다양한 문화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제이샤'다.
제이샤 대표 심영민(25'계명대 영어영문학과) 씨는 "이번 파티의 슬로건이 '청년 문화와 함께하는 신개념 파티 브랜드'다. 파티 주최 측도, 음악을 트는 디제이도, 놀러 와 즐기는 손님도 모두 지역 젊은이들이다. 이들이 서로 즐기면서 어떤 의미를 담아 교류도 할 수 있는 '놀이터'를 기획했다"며 "학업과 취업을 위해 수도권으로 갈 수밖에 없는 지역 젊은이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요소가 실은 대구의 놀이 문화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나서 신나게 놀 곳이 마땅찮다는 얘기다. 앞으로 이러한 취지를 녹여내는 파티를 계속 기획하겠다"고 했다.
◆우리 '발전적으로' 놉시다
요즘 다양한 활동을 위해 모이는 젊은이들이 많다. 각종 공모전 준비, 자원봉사, 토론 및 모의면접 등이다. 얼핏 보기에는 학교 공부가 아닌 다양한 소양을 얻으려는 모임으로 비친다. 하지만 많은 모임이 결국 취업에 필요한 스펙 쌓기와 연결된다. 공모전 수상 경력 한 줄을 이력서에 넣으려고, 졸업에 필요한 자원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해, 그리고 기업 채용 전형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토론과 면접에서 다른 경쟁자들을 이기기 위해.
이러한 스펙 쌓기와 상관없이 '놀고 싶어서'(?) 만든 지역 젊은이들의 단체가 있다. 물론 '그냥' 노는 것은 아니란다. '퍼비스트'다.
대표 김예진(23'여'경북대 경제통상) 씨는 지난해 8월 동갑내기 친구 2명과 함께 이 단체를 만들었다. "수도권과 비교했을 때 대구 안에서 젊은이들이 주체적으로 문화를 만들고 또 즐기는 활동이나 환경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한마디로 '놀 판'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퍼비스트는 지난해 8월부터 다른 청년 단체들과 함께 네트워크 파티를 열고 있고, 외국인과 지역 젊은이들이 함께하는 농촌 체험 프로그램, 동성로 축제 예술 퍼포먼스 참여 등 지역 젊은이들이 교류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기획'진행했다. "대학은 스펙 쌓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파티는 사람들이 모이기 쉽고, 소통하기 좋은 도구라고 봐요."
여기에 퍼비스트만이 낼 수 있는 색깔도 가미했다. "제 주변에 전시나 공연을 하기를 원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아마추어나 학생이라는 이유로 재능을 발산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파티에 더해 각종 전시'공연 콘텐츠를 넣는 시도를 했어요."
그러면서 퍼비스트도 지역 다양한 대학생들로 구성된 단체가 됐다. "행사를 진행할 스태프를 모집할 때 겉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우리 지역에 있는 대학마다 인원을 골고루 배분했어요. 지역 젊은이들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개성을 모으고 싶어서였어요."
지난해 12월 18일 대구 덕원고에서 진행한 '고3들의 수다'는 퍼비스트가 맛본 가장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고3들을 대상으로 겨우 몇 살 더 많은 대학생이 강연자로 나서 서로 '묻고 답하는' 강연회를 연 것이다.
"아무래도 파티는 20대들이 즐기는 모임이잖아요. 그러지 못하는 10대들이 떠올랐어요. 특히 곧 20대가 되고, 대학생이 되는 수능 친 고3들이 생각났어요. 요즘은 대학 신입생이 되자마자 취업 준비를 시작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대학은 취업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고요. 모두 반짝이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라고요."
◆탁 트인 바깥에서 청년 문화 조성
실내가 아닌 탁 트인 실외에 대구의 청년 문화를 모으는 젊은이들이 있다. 올해부터 '대학 앞 도깨비 시장'을 열고 있는 '멀티탭'이라는 단체다. 주인공은 홍미지(23'여'대구가톨릭대 경영), 이수연(23'여'계명대 국제통상), 김소정(23'여'영남대 국제통상), 김민아(23'여'영남대 국제통상) 씨. 이들은 어릴 적부터 패션과 예술에 관심이 많던 동갑내기 친구들이다. 자연스럽게 패션과 예술을 한 데 담을 수 있는 '플리마켓'(flea market'벼룩시장)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다 이달 14일 영남대 정문 앞에서 처음으로 도깨비 시장을 열었다. "대학생들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2, 3시간 동안 '반짝' 열기 때문에 '도깨비 시장'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젊은이들이 와서 중고품은 물론 직접 만든 옷이나 액세서리 등 창작품을 팔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마추어 예술가들의 공연이나 전시도 곁들여진다. 앞으로 매달 한 번씩 지역 각 대학 앞을 돌며 시장을 열 계획이란다. 다음 장은 다음 달 9일 경북대 북문 앞에서 열린다.
"사실 대구에 다채로운 청년 문화가 어우러질 수 있는 환경이 충분했다면 저희가 이렇게 나서지 않았을 거에요. 유흥을 즐기는 문화는 충분하지만 이렇게 창작품을 내놓고, 자기만의 개성과 작은 꿈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은 부족한 것 같아요. 앞으로 우리가 여는 공간 안에서 젊은이들이 원하는 다양한 시도를 담아 볼 생각입니다. 물론 실패도 경험하고, 시행착오도 얻으며 젊음의 특권을 한껏 맛보고 싶어요."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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